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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력서 50부 준비해온 베이비부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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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조혜경
경제부문 기자

‘2012 베이비부머 일자리 박람회’가 열렸던 12일 경기 고양시의 킨텍스에서 만난 황호연(52)씨. 3장짜리 이력서를 50부 넘게 들고 나왔다. 관리직을 뽑는 기업이라면 일단 죄다 내고 보겠다는 심산으로 넉넉히 준비해 왔다고 했다. 그는 업계에선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자동차 부품 중견기업의 재무팀 부장까지 하다 지난해 회사를 나왔다. 20년이 넘는 직장생활이 끝났다는 생각에 한동안 허탈감에 빠져 집에만 있었지만 지금은 “받아만 준다면 이름 없는 회사라도 괜찮다”고 말했다.

  박람회장에는 황씨 같이 번듯한 경력을 갖고서도 ‘조건은 안 따지는’ 참가자가 많았다. 이들은 반드시 ‘풀타임’에 연봉 100%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입을 모았다. 김기혁(51)씨는 “월급 적게 받고 주 3~4일씩 근무하는 것도 대환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기업의 입장은 달랐다. 사람을 뽑으러 박람회에 나온 한 자동차 부품제조사의 임원은 “솔직히 연봉을 어떻게 줘야 할지 고민돼 채용이 망설여진다”고 털어놨다. 기업은 높은 연봉 부담에 고민을 하고, 구직자는 “연봉 따지지 않겠다”고 하고. 일종의 미스매치다.

 사실 베이비부머 은퇴세대들이 원하는 것은 높은 연봉이 아니다. 황호연씨는 “내가 직장을 구하는 이유는 아직 사회에서 필요한 사람이고 싶어서”라고 밝혔다. 그러나 현실은 이 같은 ‘자존감을 맛보고 싶어하는 재취업자의 희망’을 만족시켜 주지 못하는 것 같다. 정부 정책부터 그렇다. 고용노동부나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진행하는 중장년층 재취업 지원들은 직업훈련과 비용 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보다는 기업들이 탄력적인 근무체제를 도입해 1차 은퇴자들이 파트타임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정말 시급한 정책 아닐까.

 그리고 또 하나. 중장년층을 위한 취업시험 학습 역시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한 부분인 것 같다. 이번 박람회에서 적지 않은 참가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력서 첨삭이나 면접컨설팅, 오늘 이 자리에서 처음 받아보네요.”

조혜경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