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는 이 없는 쇼핑타운 … “두 달째 가구 하나도 못 팔았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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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소상공인 살리기 지원이 재래시장에만 몰리면서 지역 쇼핑상가의 시름이 더 깊어지고 있다. 인건비를 아끼려 직원을 해고하거나 임대료 부담 때문에 점포를 축소·이전하는 상인이 많다. 지난 9일 한때 지방에서 가구를 사러 올라온 사람들로 북적거렸던 서울 북아현동의 가구거리는 주말에도 사람이 없어 썰렁했다. [김도훈 기자]

지난 9일 130여 개의 가구점이 모여 있는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가구거리. 330㎡(100평) 규모 베네치아 가구점은 손님을 맞는 점원 대신 문 앞 화장대 위에 명함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맞은편 D가구점을 운영하는 김상석씨는 “전엔 판매사원, 배달기사 등 최소 두 명을 고용했다. 요즘은 매출 급감에 인건비라도 줄이려고 가게도 못 지키고 혼자서 영업·배달까지 하는 사장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개인 가구점을 운영하는 이모씨는 “9월에 결혼하는 신혼부부들이 많다는데 두 달째 예약이 한 건도 없다”고 말했다. 에몬스 가구점을 운영하는 송인규씨도 “예년에 한 달 5000만원 정도였던 매출이 요즘 한 달 3000만원대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정부의 소상공인 살리기가 재래 시장에 집중된 사이 지역 쇼핑상가 상인들의 주름살이 깊어지고 있다. 손재영 건국대 부동산학 교수는 “지역 쇼핑상가도 자영업자들의 생존권이 걸린 만큼 이들에게도 ▶할인축제 ▶쇼핑 마일리지 제공 ▶볼거리 마련 같은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의 대표적 아웃렛 패션 거리였던 서울 송파구 문정동 로데오거리. 이곳의 골프 브랜드 MU스포츠 매장과 스포츠의류 편집매장 인터스포츠는 두 달 전 한 달 간격으로 문을 닫았다. 각각 cj푸드빌의 투썸플레이스와 유니클로가 입점할 예정이다지센·라인 등 10개가 넘는 여성복 매장들도 줄줄이 빠져 나갔다. 이종덕 문정동 로데오상가협동조합 이사장은 “젊은이들이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가든 파이브로 몰리며, 상반기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가 줄었다”고 말했다. 임대료를 줄이느라 점포 크기를 줄이는 매장도 많다. 캐주얼의류 브랜드 테이트는 지난달 1, 2층 330㎡(100평) 규모의 매장을 3분의 1 크기 매장으로 옮겼다. 한 스포츠 매장의 한 직원은 “명동은 에어컨으로 호객을 한다지만 우리는 손님이 없어 에어컨 대신 선풍기로 지난여름을 났다”며 한숨을 쉬었다.

서울 문정동 로데오거리의 골프웨어 아웃렛 MU스포츠는 업종 전환을 검토 중이다. [김경빈 기자]

 ‘전자 메카’로 불렸던 서울 용산전자상가는 열 곳 중 세 곳이 빈 점포다. 국제업무단지 조성으로 내년 6월 철거되는 터미널 전자상가는 매장 절반가량이 이미 비었다. 노트북 가게를 연 지 9년 된 우상용씨는 “넷북 열풍이 불 때도 어려웠는데 태블릿PC가 대세가 된 요즘엔 매출이 작년보다 10% 더 떨어졌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경기 침체에 유통구조 변화라는 소용돌이가 더해져 지역 쇼핑타운의 사정이 악화된 것으로 보고 있다. 박대원 상가정보연구소 소장은 “온라인으로 사는 구매 행태 변화에다, 상가들의 노후화로 지역 소비자가 새로 생겨난 원거리 대형 쇼핑몰로 몰리는 소위 ‘빨대 효과’가 더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구 노력도 힘에 부친다. 문정동 로데오상가협동조합은 송파구청과 ‘로데오 상권살리기’ 운동을 시작했다. 재래시장 상품권인 온누리 상품권을 쓸 수 있게 하고, 물류센터를 만들어 의류 배송 시스템도 갖췄다. 하지만 보도블록과 노후 가로등을 바꾸고 가로수를 정비하는 사업은 서울시 허가가 나지 않아 표류 중이다. 이종덕 이사장은 “서울시가 소상공인들을 지원하진 못할 망정 상권 살리기를 단순 보도블록 정비로 여겨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아현동 가구거리도 북아현동주민센터와 매년 10월마다 세일 행사를 하지만 역부족이다. 박진희 아현동 가구거리번영회 회장은 “지자체와 함께 하는 행사가 많아져 가구 거리를 더 널리 알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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