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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페드컵] 히딩크의 한국언론 따돌리기

중앙일보

입력

"어느 나라 감독이야?"

거스 히딩크 감독을 취임 시작부터 `밀착' 취재해온 국내 기자들은 1일 컨페드컵 멕시코전을 앞두고 무척 황당한 경험을 했다.

31일 밤 울산 문수월드컵경기장. 팀 훈련을 마친 히딩크 감독은 예정된 스탠딩 인터뷰에 앞서 프랑스 등 외국기자들에게 둘러싸인 채 `정담'을 나눴다.

2시간 넘게 진을 쳤던 방송사측에서 "이거 뭐하는 짓이냐"는 불만이 나왔고 곧 민망한 사고가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 도중 터졌다.

히딩크는 "설기현을 원톱으로 세우느냐"는 질문을 받자 "축구를 아느냐. 그런질문에는 답할 이유가 없다"고 면박을 줬다.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인터뷰는 고작 질문 3개를 받고 5분만에 끝났지만 정작국내 기자들을 더욱 허탈하게 한 것은 히딩크의 뒤바뀐 태도였다.

멕시코 기자 7명을 그의 곁에 바짝 붙인 채 히딩크는 마치 고기가 물을 만난 듯 유창한 스페인어로 한국과 멕시코의 전력, 한국축구의 미래 등을 거론하며 10분 넘게 지론을 펼쳤다.

더욱 가관인 것은 "한국은 현재 심리적으로 위축돼 있다. 이 문제 극복이 승리의 관건"이라는 이적성(?) 발언도 했다는 점. 히딩크의 성의없는 인터뷰 탓에 수첩에 담을 것이 없었던 국내 기자들은 멕시코기자들을 상대로 보강 취재를 하는 등 웃지못할 촌극이 뒤따랐다.

그동안 히딩크는 `한국축구의 구세주'로 포장돼 우상화란 표현이 어울릴 만큼우리 사회 곳곳으로부터 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아왔다.

그가 공식석상에 여자 친구를 데리고 나오는 안하무인의 행동을 저질렀을 때에도 국내 언론은 사생활에 대해 왈가왈부한다는 인상을 주기싫어 그저 눈감아 주기도 했다.

물론 한국축구의 한계는 분명 존재하지만 이 시점에서 그가 과연 최선을 다했으며 한국축구는 달라지고 있는가라는 의문을 갖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월드컵을 1년 앞둔 요즘 우선 대한축구협회부터 `피고용자'인 히딩크에게 더 이상 눈치보지 말고 할 말은 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울산=연합뉴스) 김재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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