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파티] 돋보이는 음악성, 예민 '나의 나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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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빵 애호가는 갓 구워낸 빵의 고소한 맛을 고집하죠. 그래서 웬만하면 좋아하는 빵이 나오는 시간을 놓치지 않습니다.

가요 팬 여러분을 위해 방금 나온 빵처럼 신선하고 맛있는 최신 앨범 소식만을 전해드리는 'CD파티', 5월 마지막 주의 흥겨운 순서를 시작합니다.

이번 주엔 미국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자연주의 아티스트 예민의 새 앨범 '나의 나무', 매력적인 여성 록커 도원경 3집 등이 특히 돋보입니다.

예민 '나의 나무'

1990년대 초반 '아에이오우' '산골 소년의 사랑 이야기' 등 동화적인 선율과 맑은 하모니의 곡들로 사랑 받았던 예민이 오랜만에 선보인 앨범입니다.

4집 '나의 나무' 역시 자연과 삶의 아름다움을 속 깊은 음률이 귀를 사로잡는 수작입니다. 특히 천편일률적인 관성에 사로잡혀 개성을 잃어가는 가요계에서 드물게 만나는 생명력 가득한 음악이라 더욱 매력적이군요.

86년 대학가요제 출신인 예민은 93년 2집 활동 중 미국 유학길에 올라 시애틀 코니시 종합예술대학에서 현대음악을 전공했습니다. 97년 잠시 귀국, '노스탤지어'를 선보이며 존재를 알리기도 했던 그는 이듬해부터 4년여의 긴 산고를 통해 '나의 나무'를 내놓았습니다.

예민의 새 앨범에는 친숙한 우리 전통 리듬부터 중세 서양의 경건한 종교음악, 세련된 뉴에이지 등 다양한 시·공의 음악들이 조화롭게 공존하는데요, 세계 민속음악에 심취했다는 그의 음악여정이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예민은 지난해 BBS 월드뮤직프로로 한국방송대상 라디오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죠.

'나의 나무'는 현악기와 함께 플룻, 오보에 클라리넷 등 클래식을 위주로 한 편성에 인간미 넘치는 합창과 세계 민속 타악기, 절제된 컴퓨터 사운드를 더한 다채로운 편곡이 음악의 깊이를 더합니다.

새 앨범은 크게 네 개의 테마로 구성했습니다. 나무를 주제로 자연과 삶의 아름다움을 그린 '미학'을 시작으로 '사랑' '추수' 마지막으로 어린시절 추억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뜻하는 '귀소' 등을 모두 10 곡의 노래에 담았죠.

서곡 '새벽 빗자루들의 춤'에 이어 등장하는 '마술피리'는 '원하는 세상에 모시고 가 드릴께요, 손을 줘봐요 제게'란 메시지로 듣는 이를 그만의 음악세계로 인도합니다. 어린이들의 합창이 어우러진 '식물원 가는 길' 'Tree Of Life' '어린초록' 등은 계절에 흐름에 따라 나무에 비친 자연을 그린 곡들이죠.

'하늘꽃' 등 사랑 노래들은 간결한 편곡과 읇조리는 듯한 보컬로 지나간 기억을 화상합니다. '농부의 들녘'은 웅장한 구성으로 추수의 기쁨을 노래했구요, 발라드 '햇살과 같은 내집'은 차분하게 앨범의 대미를 장식합니다.

도원경 '멍청이 / 다시 사랑한다면'

93년 '성냥갑 속 내 젊음아'를 부르며 등장한 도원경. 발라드, 댄스 일색이던 당시 가요계에 작곡능력까지 겸비한 정통 여성 록커의 출현은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죠. 특히 선 고운 외모와 달리 예의 록커 특유의 폭발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는 음악과 무대는 많은 이를 매료시켰습니다

이후 '록 댄스'라는 외도로 오히려 쓴 침을 삼켜야 했던 2집, 록으로의 회귀를 외친 3집 '난 인형이 아니에요' 등으로 꾸준한 활동을 보였지만 자신의 잠재력을 한 껏 꽃피우진 못했죠.

그런 그녀가 2년 반 만에 한 층 성숙한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새롭게 선보인 4집은 영국·미국 등 본고장에서 직접 몸으로 익힌 감성적인 록 사운드와 무조건 질러대기보단 개성을 살려낸 보컬, 무엇보다 직접 만든 수록곡 대부분에서 세월과 함께 농익은 음악성이 돋보이는군요.

98년부터 현지 콜럼비아 프로덕션을 통해 1년 반 가량 펼친 일본 활동도 도원경에겐 보약이 됐습니다.

첫 곡 '멍청이'는 길들여진 본능에 갇힌 자신을 비난하는 곡. 일부러 그랬을까. 음악적으로도 과거 그녀의 노래들을 떠올리게 하는군요. 이어지는 '나를 잡아줘' 등 나머지 수록곡들은 각기 다른 개성과 세련된 모던 록 사운드가 매력적입니다.

'부활'과 '시나위'의 리더로 한국 록을 이끌어온 김태원과 신대철은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후배를 위해 애잔한 록 발라드 '다시 사랑한다면'과 '내남은 사랑'을 선물했습니다. 후반부의 연가 '늦은 밤'과 'Dream Love'도 귀를 사로잡는 곡들입니다.

이상혁·정성필(기타), 김도영(베이스), 최보경(드럼)의 군더더기 없는 연주도 일품입니다. 1∼3집의 곡들과 라이브 동영상 등을 수록한 보너스 CD도 함께 담았습니다.

파파야 2집 등 그밖의 앨범

지난해 상큼한 댄스곡 '내 얘길 들어봐'와 '아잉'을 연발하는 깜직한 무대매너로 사랑 받았던 파파야는 조혜경·주연정·강세정의 3인조로 팀을 재정비하고 두 번째 앨범을 내놨군요.

주영훈이 프로듀싱한 2집 역시 특유의 매력에 걸맞은 댄스곡들로 채웠는데요, 괜히 어정쩡한 랩으로 힙합 어쩌구 하는 이도 저도 아닌 그룹들 보다 오히려 듣기 편합니다. 조규만이 만든 타이틀곡 '사랑만들기'는 편한 맬로디와 세련된 편곡이 귀에 감기는군요.

지난해 해체한 보이그룹 잭스키스의 리드 보컬을 맡았던 강성훈 역시 은지원에 이어 두 번째로 솔로 앨범을 선보였습니다. 잭키 팬들에겐 굉장히 반가울 소식이지만, 전반적으로 아직 이른 감이 있군요.

물론 설익은 음악성 때문인데요. 다양한 스타일의 곡들을 소화하긴 했지만 그룹 시절을 극복할 만큼 무게감을 주진 못합니다. 타이틀 곡은 '축복'.

76·78년의 공연 실황을 새롭게 편집한 조영남의 라이브 앨범도 눈길을 끕니다. 당시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던 그의 걸출한 가창력과 함께, 복고열풍이 한창인 신세대나 20여년 전 가요계를 추억할 장년팬들에게 모두 즐거운 경험을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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