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로키산맥의 정복자 햄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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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부사 햄튼

박찬호의 다음 상대인 마이크 햄튼(28 · 콜로라도 로키스)은 케빈 브라운 못지 않은 승부욕으로 유명하다.

99년 휴스턴 애스트로스에서 20승투수가 된 햄튼은 곧바로 뉴욕 메츠로 불려갔다.

메츠에는 '타도 브레이브스'와 월드시리즈 진출의 선봉장이라는 무거운 짐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1999년 3월 30일, 일본 도쿄돔에서 있었던 시카고 컵스와의 메이저리그 개막전. 햄튼은 9볼넷 2실점으로 무너졌다. 그는 이후 7경기에서 2승4패 방어율 6.52로 추락했고, 전년도의 20승은 운으로 돌려지기 시작했다.

부진이 극에 달했던 5월 초, 햄튼은 15분간 톰 시버와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햄튼은 랜디 존슨(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이 놀란 라이언과의 조우 이후 변했던 것처럼 완전히 달라졌다. 햄튼은 이후 13승6패 방어율 2.48의 성적을 거두며 진정한 에이스로 올라섰다.

팀이 자신을 영입한 이유를 잘 알고 있었던 그는 디비전시리즈와 리그챔피언십시리즈에서도 맹활약하며 메츠를 월드시리즈로 이끌었다.

시즌이 끝나고 햄튼은 1억2천만달러에 콜로라도 로키스의 유니폼을 입었다.

로키스에서의 성공가능성은 극히 불투명했다. 햄튼이 땅볼을 많이 유도하는 투수이긴 하지만, 그때까지 그는 애스트로돔과 셰이스타디움이라는 투수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홈구장만 사용해왔다. 실제로 햄튼은 지난해 원정경기에서 4승6패 방어율 4.86으로 부진했던 반면, 홈에서는 11승 4패 방어율 2.05로 맹위를 떨쳤다.

입단식에서 대릴 카일(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실패담을 언급한 기자에 대해 "노모 히데오는 쿠어스필드에서 노히트노런도 했다"라며 강한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던 햄튼은 현재 자신의 공언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다.

7승(1패)은 내셔널리그 다승 2위이며 2.65의 방어율은 4위에 해당된다. 더 놀라운 것은 무적에 가까운 쿠어스필드에서의 성적(3승무패 방어율 2.30)이다.

▶ 피하지 않는다

햄튼과 시버가 했던 대화의 내용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분명한 한가지는 이후 햄튼이 매우 공격적으로 변신했다는 사실이다.

과거 햄튼은 좋은 제구력에도 불구하고 정면승부를 피하는 습관 때문에 볼넷이 많았다. 그러나 공격적인 피칭을 구사하기 시작한 이후 4.44(99시즌~00시즌 첫 7경기)였던 9이닝당 볼넷허용율은 3.16(00시즌 나머지 경기)을 거쳐 올 시즌에는 2.77로 뚝 떨어져 있다.

직구는 평균 85마일로 별로 빠르지 않지만, 묵직하고 낮게 컨트롤되는 덕에 좀처럼 장타를 허용하지 않는다. 또한 주무기로 삼고 있는 커트패스트볼은 많은 땅볼타구를 유도해낸다. 가끔씩 던지는 체인지업 또한 만만히 볼 게 아니다.

지난해 햄튼의 9이닝당 홈런허용율(0.41)은 내셔널리그에서 가장 좋았으며, 땅볼/플라이볼 비율은 그렉 매덕스(애틀란타 브레이브스)에 이은 2위였다.

▶ 박찬호와 햄튼

이번 대결을 두고 야단법석인 이유는 햄튼이 향후 박찬호의 몸값에 대한 지표라는 것이다. 그러나 햄튼은 박찬호가 나가보지 못한 포스트시즌에서 좋은 활약을 했으며, 한 팀의 에이스 역할도 해봤다. 좌완투수라는 희소성 역시 박찬호보다 한 수 위다.

두 투수간의 맞대결에서는 1승으로 박찬호가 우위에 있다.

첫번째 만남은 박찬호가 풀타임 선발투수가 된 첫해였던 97년. 박선수는 7이닝 4실점으로 부진했지만, 햄튼은 4와 2/3이닝 5실점으로 더 부진했다. 두번째는 박찬호에게 최악의 해이자 햄튼에게는 최고의 해였던 99년에 있었다. 박선수와 햄튼은 각각 7이닝 1실점과 7 1/3이닝 1실점으로 승패없이 물러났다.

박찬호가 햄튼을 의식할 필요는 전혀 없다. 그가 대결해야할 상대는 햄튼이 아니라 로키스의 타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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