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건설 2000억 지원 급물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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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의 쌍용건설 지원 논의가 본격화됐다. 건설업계 13위인 쌍용건설은 최근 프로젝트파이낸싱(PF) 손실과 매각 무산으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쌍용건설 대주주인 자산관리공사(캠코)와 산업·우리·신한·하나·국민은행 등 채권단은 이날 회의를 열고 총 2000억원 규모의 자금지원 방안을 논의했다. 캠코가 쌍용건설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700억원을 우선 지원하고, 5개 채권은행이 나머지 1300억원을 분담하는 내용이다. 캠코 관계자는 “채권단 내에서도 지원 필요성에 대해 이견이 없다”고 전했다. 권혁세 금융감독원장도 이날 “기본적으로 채권단이 협의해 풀어야 한다”면서도 “잘 안 되면 원활히 협의가 이뤄지도록 금융당국이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싱가포르의 랜드마크인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을 준공해 해외에서 유명해졌던 쌍용건설이 악전고투하고 있다. 장기간의 매각 실패 후유증에다 경기 부진에 따른 유동성 위기 등으로 부도 위기를 맞고 있다. 최근 최대주주인 자산관리공사와 5개 은행으로 구성된 채권단이 긴급 수혈에 나섰지만 자칫 건설업계 전체의 위기로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서울 신천동에 위치한 쌍용건설 본사 사옥 전경. [박종근 기자]

 쌍용건설 지원에 당국까지 나선 건 상징성이 크기 때문이다. 쌍용건설은 대기업 계열이 아닌 건설사 가운데선 가장 크다. 지난해 1조700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고, 1400개에 달하는 협력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장은 “쌍용건설이 무너지면 국내 건설업계에 미치는 영향이 엄청날 것”이라며 “대기업 계열사만 살아남는다는 사회적 인식이 확산되는 것도 부담”이라고 말했다.

 해외건설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했다. 쌍용건설은 현재 동남아와 중동에서 3조원 규모의 공사를 수주했거나 진행 중이다. 특히 동남아와 중동에서 고급 호텔을 짓는 건설사로 알려져 있다. 김태엽 해외건설협회 정보기획실장은 “쌍용건설이 수주를 앞두고 있는 것만 96억 달러 규모”라며 “이런 회사가 흔들리면 해외 시장에서 국내 건설사의 신인도가 하락하는 것은 물론 해외건설 중흥에도 찬물을 끼얹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회생 가능성도 상대적으로 큰 것으로 평가된다. 쌍용건설은 올 상반기에만 남산반야트리호텔, 종로 오피스빌딩 등 9개 PF 사업장을 정리했다. 지난해 말 1조1000억원에 달했던 PF 규모가 6월 말 절반 수준인 5700여억원으로 줄었다. 2007년 말 3000가구가 넘었던 미분양 주택도 370가구로 감소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쌍용건설은 사실상 정부가 소유하고 있는 회사인 데다 법정관리로 갈 경우 채권단 손실이 커지는 만큼 채권단이 어떻게든 해법을 내놓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제는 시간이다. 쌍용건설과 업계는 자금지원이 늦어질 경우 하청업체 부도와 공사 중단 등 경영 차질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쌍용건설은 이미 지난달 말에 주기로 했던 하청업체 공사대금 540억원을 주지 못하고 있다. 10일까지 대금 지급이 안 될 경우 하청업체들의 어려움이 현실화될 것이라는 것이다. 채권단은 상대적으로 느긋하다. 캠코가 급한 자금을 우선 지원키로 한 만큼 4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만기가 돌아오는 월말까지 지원계획을 확정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캠코와 산업은행, 시중은행들은 자금 지원의 전제조건과 분담비율 등을 두고 이견을 보이고 있다. 채권단 관계자는 “자금 지원이란 큰 틀엔 이견이 별로 없지만 누가 얼마를 지원할지 등 각론을 놓고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쌍용건설 이효연 부사장은 “회사의 성장 동력이 충분하기 때문에 유동성 지원을 받는다면 조속히 정상화할 수 있다”며 “전사적으로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나현철·황정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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