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 베이스] 야구선수들의 거짓말

중앙일보

입력

"몸쪽 높은 공이었어요."

한국 프로야구 홈런 타자였던 이만수는 홈런을 치면 인터뷰에서 거의 똑 같은 대답을 했다.

그러나 이만수의 홈런 코스는 몸쪽이 아닌 바깥쪽 높은 공이었다. 잘 모르는 투수들은 신문이나 방송 인터뷰를 보고는 주로 바깥 쪽 공을 던졌고 힘 좋은 이만수는 이를 힘껏 잡아 당겨 80년대 초반 세번이나 홈런왕이 됐다.

언론 매체를 멋지게 이용한 거짓말이었다.

또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MBC 청룡의 송영운이라는 선수는 선동열을 맞아 주자를 3루에 둔 상황에서 선동열의 투구가 원바운드되며 뒤로 빠지는 순간, 공에 발등을 맞았다고 심판을 속여 당시 김동엽 감독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그가 공에 맞았다고 우기는 바람에 공이 빠지는 틈을 타 홈인해 결승점을 올렸던 3루주자는 다시 원위치로 돌아갔고 결국 패하고 말았다.

자기 거짓말에 자기가 당한 경우였다.

39년 뉴욕 양키스의 루 게릭은 은퇴식에서 "나는 지금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거짓말을 했다.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불치의 근육 마비병을 앓아 은퇴를 하는 마당에 행복할 리 없었지만 그는 수많은 팬들 앞에서 자신의 슬픔을 내비치지 않았다. 팬들을 감동시킨 위대한 거짓말이었다.

요즘 박찬호도 거짓말을 종종 하는 것 같다.

기자가 "오늘도 타선의 지원이 형편없었는데 이에 대한 소감은?"이라고 물으면 박찬호는 "나는 투수니까 선발투수로 역할을 다한 데 만족할 뿐입니다"라고 대답한다.

답답하기로 따지면야 본인보다 더 하랴 만은 답답한 타선에 짜증나기는 구경꾼들도 마찬가지다. 팀동료를 생각해주는 박찬호의 기특한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이제는 그 대답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팬들도 없는 것 같다.

경기가 끝난 다음에는 차라리 "오늘은 제가 못던졌지만 폭발적인 타선의 지원덕분에 이겼습니다"라고, '틀림없는 진실'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 퍼스트 베이스 홈으로 가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