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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에게 물려받을 경제적 유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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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일러스트=강일구]
김종수
논설위원

대선을 치르는 해의 경제실적은 선거에 어떤 영향을 줄까. 대통령의 중임을 허용하는 미국의 경우는 비교적 계산이 간단하다. 재선을 노리는 현직 대통령은 당연히 경제실적이 좋아지기를 바란다. 경제를 살렸다는 업적이 재선가도에 큰 도움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직 대통령은 성장률을 높이고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경기 부양책을 쓰려 한다. 여기에 도전하는 야당 후보는 현직 대통령의 임기 말 경제가 나쁜 편이 선거에 유리하다고 본다. 경제를 죽 쑨 책임을 현직 대통령에게 돌리고 자신은 경제를 살려내겠다고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급적 임기 말 경제실적을 폄하하고, 막판에 경기를 살려보려는 현직 대통령의 부양책을 한사코 반대한다. 부양책의 부작용도 걱정스럽지만, 그보다는 현직 대통령의 경제적 업적이 높게 평가되는 게 못마땅하다. 당선된 이후를 감안해도 전임 대통령의 경제 성적이 나쁜 편이 유리하다. 호황을 계속 유지하기보다는 나쁜 경제를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만들기가 쉽기 때문이다. 경기순환적인 측면에서 봐도 나빠진 경기가 살아날 확률이 좋은 경기가 더 좋아질 가능성보다 높다. 

대통령 단임제인 우리나라에서는 계산이 다소 복잡하다. 일단 현직 대통령은 어떻게든 경제가 좋아진 상태에서 임기를 마무리하고 싶은 게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재선을 노리는 미국의 대통령만큼 절실하지는 않다. 경기를 살리려고 노력은 하겠지만 반드시 그래야 할 만큼 절박한 것은 아니다. 여당의 대통령 후보는 입장이 미묘하다. 현직 대통령과의 관계가 원만하고, 그의 후광이 대선에 필요하다고 판단한다면 임기 말 경제실적이 좋은 편이 유리할 것이다. 특히 선거에서 정책의 연속성이 중시되고, 집권당의 정권 재창출이라는 목표가 유권자들에게 설득력을 가진다면 가급적 임기 말 경기가 나아지는 것이 선거에 보탬이 된다고 볼 것이다. 그러나 현직 대통령의 인기가 바닥이고, 차기 대선 후보와의 관계가 썩 원만하지 않다면, 정권의 연속성보다는 전임 대통령과의 단절과 새로운 정권의 출범을 부각시키고 싶을 것이다. 이런 경우엔 전임 대통령의 임기 말 경제성적을 굳이 개선해야 할 필요성이 크지 않다.

 야당 후보 입장은 미국의 야당 후보와 비슷하다. 전임 대통령의 성과가 별 볼 일 없어야 선거에서 반사이익을 볼 가능성이 크다. 경제상황 악화를 전임 대통령의 탓으로 돌리면서 여당 후보까지 싸잡아 공동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공격하기에 그만이다. 특히 현직 대통령의 인기가 땅에 떨어진 경우 경기 부진은 정권교체의 필요성을 부각시키기에 딱 좋은 호재다.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옛 선거구호의 현대판 버전이다.

 이런 계산법대로라면 대선을 석 달가량 앞둔 현재의 경제상황은 일단 야당에 유리하게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상반기에 2%대를 기록했던 경제성장률이 하반기에도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연간 성장률도 정부의 목표치(3.3%)에 훨씬 못 미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경제를 살리겠다는 공약으로 당선된 이명박(MB) 정부가 경제를 살리기는커녕 노무현 정부 시절보다도 못한 경제실적을 낸 채 임기를 마치게 된 것이다. 야당으로선 당연히 호재가 아닐 수 없다. MB의 경제 실정(失政)을 맹공하고, 자신들이야말로 경제를 살려낼 적임자라며 국민에게 정권교체의 필요성을 호소해야 옳다. 그런데 그러질 않는다. MB의 다른 허물은 이 잡듯이 들춰내면서도 경제가 부진하고 일자리가 늘지 않은 책임은 묻지 않는다. 현재 당내 경선을 치르고 있는 민주당 대선 후보들은 물론 유력한 잠재 후보인 안철수 교수도 MB정부에서의 성장 둔화를 전혀 문제 삼지 않는다. 저성장을 불가피한 기정사실로 간주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앞으로 집권을 해도 현 정부보다 경제를 개선할 자신이 없다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사실 MB 임기 마지막 해의 2%대 성장에는 꼭 MB정부의 실정 탓으로 돌릴 수 없는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한 인구구조의 변화가 저성장의 배경을 이루면서, 유럽의 재정위기로 인한 세계적인 경기침체가 여기에 가세했다. 가계빚과 부동산 침체가 내수 부진을 부르고, 수출마저 가라앉고 있다. 이런 요인들은 부양책을 쓴다고 해서 단번에 개선되기 어려운 것이다. 구조적으로 저성장 기조가 고착될 기미가 보이는 이유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를 기정사실로 보고 지레 포기할 일은 아니다. 미처 선진국이 돼 보기도 전에 저성장에 안주할 경우 나라의 장래가 심히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연간 2%대의 낮은 경제성장률로는 젊은이들에게 변변한 일자리를 만들어주지 못하는 것은 물론 여야 후보들이 다같이 내걸고 있는 각종 복지 확대 공약도 공염불이 될 공산이 크다. 만일 올해의 성장률 둔화가 일시적인 부진이 아니라 구조적인 저성장으로 진입하는 첫 단계라고 판단한다면, 여야 대선 후보 모두 기왕의 공약을 다시 펼쳐봐야 할 것이다. 우선 내년에 MB정부로부터 넘겨받을 한국 경제의 모습이 어떠할지를 생각해보기 바란다. 그리고 그 후로도 연간 2%밖에 성장하지 못하는 나라에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 꼼꼼하게 따져보기 바란다. 아마도 그동안 막연히 그려왔던 복지천국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경제에 대한 진단부터 다시 해볼 일이다. 그래야 보다 현실적인 미래상을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