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법 개정안 누가 봐도 ‘CJ 공룡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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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이 특정 기업의 미디어 분야 독과점을 조장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방통위는 올 2월부터 채널사업자(PP) 한 곳의 매출이 전체 유선방송 매출 가운데 차지하는 비중을 33%에서 49%까지 완화하는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또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가 전체 유선방송 가입자의 33%를 넘지 못하도록 한 규정도 유선방송뿐 아니라 위성방송과 인터넷TV(IPTV)를 포함한 전체 유료방송 가입자의 33%로 완화하는 방안을 함께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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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업계와 학계 등에서는 이 같은 개정안이 확정될 경우 CJ계열이 유료방송 시장을 장악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콘텐트를 공급하는 PP와 이를 가입자에게 서비스하는 SO는 경쟁 관계다. 하지만 CJ계열은 가장 큰 PP인 CJ E&M과 3대 SO가운데 하나인 CJ헬로비전을 동시에 갖고 있다. CJ E&M은 올 3월 투자설명회에서 올해 매출을 8000억원으로 제시했다. 현행대로라면 매출 한도는 7000억원 수준이지만 시행령 개정안이 통과돼 제한이 완화되면 1조원까지 늘릴 수 있다.

 전국 77개 권역 중 19곳에서 케이블방송 사업을 하는 CJ헬로비전은 지난해 말 현재 가입자가 347만 가구로 23.4%를 차지했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SO 한 곳의 가입자 상한이 현재 446만 가구에서 660만 가구까지 늘어난다. 특히 올 하반기 상장을 추진 중인 CJ헬로비전은 가입자 상한 확대가 절실하다.

케이블방송 가입자는 2009년 1529만 가구를 정점으로 지난해에는 1486만 가구까지 줄었다. 시장이 포화된 상태에서 성장하려면 다른 SO를 인수합병(M&A)하는 수밖에 없는데 현재 규정상으로는 대형업체 인수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계열 PP가 2~3개 채널에 불과한 티브로드·C&M과 달리 CJ가 가입자 확대에 나서면 콘텐트(PP)와 플랫폼(SO)을 장악한 ‘공룡 미디어기업’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방통위는 이 같은 비판이 거세지자 지난달 31일로 예정됐던 개정안 심의를 연기했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전문 미디어 기업을 육성하려면 대형화는 피할 수 없다는 것이 방통위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KT스카이라이프 관계자는 “경쟁력 있는 대형업체를 키우겠다면서 ‘접시안테나 없는 위성방송(DCS)’은 위법으로 규정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비판했다.

케이블TV 업계에서 반발하자 방통위는 최근 DCS 가입자 모집을 금지했다. PP의 가입자 상한을 늘리기 위해 케이블·IPTV·위성방송 가입자를 통합 관리하려는 방통위가 새로운 기술을 적용한 서비스는 ‘영역 침범’이라고 규제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방통위는 “기술 발전 속도보다 법 개정이 늦어져 벌어진 일”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케이블과 위성방송은 방송법으로, IPTV는 별도의 특별법으로 규제한다.

 이처럼 한편으로는 사업 영역별로, 한편으로는 묶어서 규제하는 방통위의 이중 잣대 탓에 결국 소비자들만 손해를 본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표적인 것이 디지털 전환이다. 방통위는 올 연말 아날로그 지상파 방송을 중단한다. 하지만 국내 지상파 방송 시청자의 90% 이상은 유료방송을 통해 시청한다. 완전 디지털 방식인 위성방송·IPTV와는 달리 케이블방송은 1500만 가입자 가운데 1000만 가구가 아직도 아날로그 방식이다. 디지털 케이블 방송으로 전환하려면 셋톱박스와 장비 교체 등에 총 3조원이 들 것으로 전망된다. 익명을 요청한 KT 관계자는 “ 방송법 시행령이 개정되면 그동안 M&A를 통해 성장한 케이블TV 업계에서 또 한 차례 ‘CJ발 몸집 불리기 경쟁’이 벌어질 것 ”이라며 “이 와중에 디지털 투자는 뒷전으로 밀려 상당수의 케이블 시청자는 상당 기간 흐리멍덩한 아날로그 방송을 봐야 하는 상황이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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