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커비전] 축구장 소음 '위험 수위'

중앙일보

입력

한국 축구장은 요란하다.

딱딱 딱딱딱, 딱딱 딱딱딱딱.

전 세계에서 한국 경기장에서만 볼 수 있는 막대풍선 두들기는 소리다.

그런가 하면 경기 전이나 하프타임에는 고성능 앰프를 동원해 귀가 아프도록 유행가를 틀어 놓는다. 특히 하프타임에는 연예인을 동원한 이벤트가 단골메뉴다. 댄스가수들이 요란한 음악에 맞춰 굽높은 구두를 신고 춤을 추면서 립싱크에 열중한다.

한국 축구장의 소음은 위험 수위다. 소음은 관중을 흥분시키고 덩달아 선수들도 자제력을 잃고 폭력적인 플레이로 빠져들기도 한다.

축구 선진국을 가보자.

1986년 멕시코 월드컵 개막식 행사. 참가국 국기와 피켓을 든 멕시코 어린이들은 축구장의 잔디를 밟지 않고 터치라인 밖을 따라 입장했다.

90년 이탈리아 월드컵 개막식 행사가 벌어진 메아차 스타디움에서는 잔디를 손상시키지 않으려고 관중석 맨 앞자리에 널빤지를 깔아 그 공간에서 미녀들이 퍼레이드를 했다.

98년 프랑스 월드컵 개막식 행사는 축구장을 반으로 나눠 남녀 어린 선수들이 게임을 즐겼다. 물론 모든 선수들은 축구화를 신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자.

지난달 28일 울산문수경기장 개장에 이어 지난 13일에는 수원경기장이 문을 열었고 20일 대구경기장이 국내 세번째로 개장한다.

문수경기장과 수원경기장의 개장행사는 '여전' 했다. 관중석에는 막대풍선이 난무했고 그라운드의 잔디 위에서는 가수.무용단들이 춤추고 노래하고 난리를 피웠다.

한국에만 있는 부끄러운 장면인 시축 행사도 빼놓지 않았다. 수원에서는 무려 8명이 '떼 시축' 을 하는, 관변 행사의 극치를 보여주기도 했다.

우리는 2002 한.일 월드컵을 대비해 10개의 경기장을 신축한다. 그중 7개는 축구전용구장이다. 여기에 걸맞은 축구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전용구장의 장점은 선수들의 가쁜 숨소리, 격렬하게 부딪치는 충돌음, 푸른 잔디 위에 춤추는 축구공이 선수들의 발에서 퉁겨나가는 경쾌한 소리들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축구는 한편의 오페라다. 멋진 하모니를 이루기 위해 선수와 관중이 하나가 되는 장엄한 오페라다.

막대풍선은 선수들이 토해내는 거친 숨소리와 볼이 잔디를 가르며 구르는 소리, 심판의 휘슬소리, 선수간의 충돌음 등을 듣지 못하게 가로막는 '적' 이다.

대구경기장 이후에도 봇물터지듯 계속 개장행사가 이어질텐데 이제는 축구의 참 맛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자.

축구를 어설픈 정치 놀음으로 변질시키는 사이비 체육인들은 물러나야 한다. 군인 문화의 잔재인 시축과 축구의 참 맛을 저해하는 막대풍선도 몰아내자.

축구가 이끄는 대로, 느끼는 대로 축구장에서 자연음으로 소리질러 보자. 이 소리들은 분명 푸른 잔디와 22명의 선수와 함께 하모니를 이루며 멋진 오페라를 만들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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