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이 두남자에게 힘찬 박수를 '장동건· 유오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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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천 가지 만 가지 얼굴을 가진 배우다. 심각해 보이는가 싶으면 금방 유머러스하게 변하고, 다시 증오의 눈초리로 차갑게 관객을 쳐다보기도 한다.

빙글빙글 웃으며 교복의 앞단추를 풀어헤치고 양아치처럼 뛰어다니는 모습부터 고양이를 안고 어르는 장난스런 표정, 그리고 정장을 빼입은 조직의 중간 보스로 어깨에 힘을 준 모습까지 그의 다양한 변화는 유오성이라는 배우를 다시 보게 만든다. 과연 어떤 것이 진짜 그의 얼굴일까, 우리는 그의 진짜 얼굴을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을까,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것이다.


터프한 주먹대장, 마약중독자, 눈물 속에서 미소짓는 죄수… 유오성


- 〈친구〉로 얻은 ‘친구’

영화 〈친구〉는 사실 그에겐 곽경택 감독과의 우정의 산물인 셈이다. 처음 〈친구〉의 시나리오를 받고 바로 ‘내 역’이라는 느낌이 왔지만 TV 드라마 스케줄 때문에 출연하기 힘들었다. 감독은 그에게 늦어지더라도 기다리겠다고 했다. 뭔가 잘 풀리나 했더니 이번에는 동수 역의 캐스팅이 뜻밖의 장애물을 만나 촬영이 늦어졌다. 이번에는 유오성이 말했다. “몇 년이 걸려도 기다린다. 걱정하지 말라.” 그렇게 서로에 대한 믿음을 확인한 곽경택 감독과 유오성은 말 그대로 영화를 사이에 두고 ‘친구’가 되었다.

그런 만큼 〈친구〉 촬영에서 하나의 장면도 그는 소홀히 넘길 수 없었다. 촬영 초반에는 익숙지 않은 부산 사투리식의 원색적인 욕이 가득한 대사를 마스터하는 것도 힘들었다. 그래서 더 완벽한 연기를 위해 대본에 방점까지 찍어가며 억양을 연구했다. 부산 사람이 듣더라도 어색하지 않은 정도로 대사를 다듬기 위해선 수많은 연습의 시간이 있었던 것.

- 웃음 속 알 수 없는 쓸쓸함

유오성은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로 처음 얼굴을 드러냈지만 우리 뇌리에 강하게 박힌 것은 〈간첩 리철진〉과 〈주유소 습격사건〉을 통해서였다. 웃음을 짓더라도 왠지 모르게 쓸쓸하고 거칠고 어두워 보이는 모습. 그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간첩 리철진〉에서는 특히 더 그랬다. 서울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이리저리 헤매며 유머러스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마지막에는 뜻 모를 쓸쓸함을 남긴 채 자기 머리에 권총을 대고 방아쇠를 당겨버리는 비장함. 〈친구〉에 나온 그의 모습 역시 그런 연장선상에 서 있다.

마지막 면회 장면, 눈물을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눈동자에 힘을 준 채 강하고 씩씩한 목소리로 오랜 친구와 작별하는 그의 모습은, 그래서 더욱 슬퍼 보인다. 웃음보다 심각함이 더 어울리는 그에게, 미소는 왠지 쓸쓸한 느낌을 준다. 영화가 끝나고 관객들이 차마 일어나지 못한 채 손수건을 찾는 것은, 적어도 80%쯤은 그의 탓이다.

빡빡머리 고등학생, 야비한 건달, 칼 맞는 주인공 … 장동건


사람들은 그에게 잘생겼다고 한다. 그가 들어서면 광채가 난다. 그렇지만 너무 잘생긴 것이 징크스였을까. 〈패자부활전〉 〈연풍연가〉 등 그가 손대는 영화마다 이상스레 흥행에 실패했다. 순정만화 남자 주인공처럼 완벽한 마스크는 영화에선 먹혀들지 않는 것일까?

모두들 의아해하던 무렵 그는 〈인정사정 볼것없다〉에서 멜로 드라마의 왕자 역과는 하늘과 땅 차이가 나는 잔챙이 형사 역을 멋지게 해냈다. 그때서야 모두들 알 수 있었다. 그는 얼굴로 승부하는 스타가 아니라, 연기를 하는 배우라는 사실을.

- 순정만화 주인공에서 동네 깡패로

〈인정사정 볼것없다〉에서 그는 영화 중반부에 칼을 맞고 죽어버리는 형사 역을 맡았었다. 주연도 아니고, 게다가 일찍 죽기까지 하는 역이었지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훌륭한 감독과 뛰어난 배우들 사이에서 좋은 작품을 만든다는 게 어떤 것인가 하는 바로 그 느낌.

그리고 그 느낌이 고스란히 영화 〈친구〉에서 살아났다. 〈의가형제〉에서 얼핏 보였던 야비하고 잔혹하며 냉정한 그의 배우로서의 또 다른 얼굴이, 〈친구〉에서 놀랍도록 생생하게 드러난 것. 폭력 조직의 중간 두목 역을 맡은 그는 더 이상 양처럼 선량한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지 않는다. 입가 한쪽을 일그러뜨리며 냉소적으로 미소짓는 그. 스크린 너머 무언가를 증오하듯 미움과 독기로 가득한 눈매는 우리가 익히 아는 그가 아니다. 맘에 드는 여자를 바라보는 표정 역시, 〈이브의 모든 것〉에서 채림을 들뜨게 했던 지적인 모습이 절대 아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섹시하면서도 욕망이 생생히 드러나는 얼굴 표정은, 우리가 책상 앞에 붙여두던 장동건의 브로마이드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 배우로서의 마지막 힘까지 짜낸 영화 〈친구〉

영화에서 질퍽한 부산 사투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그는, 사실은 서울 토박이다. 캐스팅된 다음 항상 경상도 사투리로 말하는 버릇을 들인 결과, 물 흐르듯 유연한 사투리가 나왔다. 정작 그는 외국어를 하는 것처럼 힘들었다고 하지만. 평소와는 다른 허스키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일부러 줄담배를 피워대며 목을 학대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런 변신도 그가 살해되는 장면에 들인 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장대 같은 소낙비가 퍼붓는 사이 상대 조직의 하수인이 그의 등과 배에 마구 칼을 꽂는 그 장면을 찍기 위해 그는 한겨울에 사흘 동안 차가운 비를 뒤집어써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스무 번도 넘게 촬영을 반복한 다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의외의 대사였다. “죄송한데요, 제 감정대로 한 번만 더 찍으면 안 될까요?”

지금 그는 〈2009 로스트 메모리스〉를 위해 서울과 일본을 오가며 바쁘게 촬영하는 중이다. 〈친구〉의 성공에 달뜨기보단, 〈친구〉의 촬영이 끝나자마자 바로 양수리로 들어가 다음 작품을 묵묵히 준비하는 과묵함을 보인 그. 이제 우리는 그의 브로마이드를 책상에 붙이기보다 그의 연기를 보러 극장으로 가야 할 것 같다. 배우 장동건에게 힘찬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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