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10대산업 키우자] 3. 일본 무라타제작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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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무라타 제작소는 교세라와 함께 고도(古都) 교토를 벤처단지로 바꾼 주역이다.

세라믹 전자 부품에만 50년간 고집스럽게 매달리면서 '모든 제품에는 무라타가 들어있다' 는 그들의 슬로건대로 모든 전자제품의 필수품이 됐다.

우리가 쓰는 휴대폰이나 TV도 뜯어보면 핵심부품은 무라타 제품이다. 10년 뒤를 내다보는 연구개발, 자신들의 분야 이외에는 쳐다보지 않는 경영 방식 등은 원천기술 부족에 허덕이는 국내 부품.소재업체들이 나갈 길을 제시하고 있다.

일본 교토에서 전철로 20여분 떨어진 외곽도시 나가오카교(長岡京)시의 무라타 제작소 본사에서는 '제작소' 를 찾을 수 없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낡은 건물엔 경영진을 비롯한 관리조직만 자리잡고 있다. 핵심인 '제작소' 는 가나자와(金澤).도야마(富山).오카야마(岡山) 등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다.

회사 이름은 다소 촌스럽지만 무라타가 제작하는 세라믹계 전자부품은 세계 최첨단이다. 세계시장 점유율 30% 이상인 제품이 여섯개나 된다. 특히 여러개의 콘덴서 기능을 집약해 극소형화한 '칩 적층 세라믹콘덴서' 는 세계시장의 절반을 차지한다.

◇ 선택과 집중이 열쇠=전문가들은 무라타제작소의 경쟁력의 원천을 한결같이 '선택' 과 '집중' 으로 요약한다.

창업자이자 명예회장인 무라타 아키라(村田昭)는 '세라믹 편집증 환자' 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50여년간 세라믹에 모든 것을 걸었다. 전형적인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고위험 고수익)전략이었지만 가전제품의 대량 보급과 정보통신 붐을 타고 적중했다.

세라믹 전자부품은 모든 전자제품에 반드시 사용되므로 전자업계의 길목을 잡고 있는 분야다. 따라서 무라타는 최근 정보기술(IT)경기가 위축된다고 걱정하지 않는다.

창업 초기에 세라믹 부품이라는 아이템을 선택했다고 경쟁력이 저절로 주어진 것은 물론 아니다. 세라믹 부품은 기술축적에 투입한 시간과 노력이 곧 경쟁력으로 이어지는 대표적인 기술집약 업종이다. 자금만 잔뜩 들고 뛰어든다고 되는 게 아니다.

컴퓨터로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세라믹의 특성상 가마에서 도자기를 구워내는 장인의 손감각과 같은 아날로그적인 기술축적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재료를 어떻게 조합하고 몇도에서 구워내는지에 따라 제품의 성능과 용도가 제각각이다. 무라타는 오랜 연구와 시행착오를 거쳐 경험을 쌓아 지금의 경쟁력을 확보한 것이다.

◇ 글로미스와 매트릭스 경영=무라타의 기술력은 정확한 수요 예측과 제품개발에 힘입어 꽃피고 있다. 연구개발(R&D)에는 매년 매출액의 7%(올해 약 3백억엔)를 투자하고 있다. 이 돈은 재료.생산.제품 기술개발에 3분의1씩 나눠 사용된다. 그 결과 매년 신제품을 만들어내 총매출에서 차지하는 신제품 비율이 30%에 달한다.

또 분야별 기술책임자들은 늘 10년 앞의 기술판도를 예측해 그에 맞는 부품개발에 나서고 있다. 어려운 수요예측은 독자개발한 경영정보시스템인 '글로미스' 를 활용한다.

글로미스는 무라타의 전 영업조직과 R&D 및 생산팀을 연결한 온라인 네트워크다. 단말에는 영업직원들이 입수해온 고객들의 신제품 개발계획 정보가 무수히 입력된다.

이를 연구개발팀이 분석해 장래의 부품수요를 예측, 개발에 착수한다. 낭비적인 R&D를 없애고 고객이 원하는 신제품을 순발력 있게 공급하게 하는 신경망인 셈이다.

대기업병에 걸리지 않으려는 노력도 눈에 띈다. 제품.공정별로 정교한 독립채산제를 실시해 철저하게 손익을 관리하고 있다.

이른바 '매트릭스경영' 이다. 무라타는 하나의 회사이지만 실은 무려 2천5백개가 넘는 유닛(단위조직)으로 세분화돼 있다.

경영진은 이들이 각자의 능력을 최고로 발휘하면서 이익과 효율을 추구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경영다각화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무라타 야스타카(村田泰隆)사장은 "세라믹 부품에서도 얼마든지 더 뻗어갈 여지가 많으므로 생소한 분야에는 뛰어들지 않겠다" 고 말했다.

부품업체를 계열화하지 않고 자유롭게 경쟁하도록 내버려둔 일본 대기업들의 경영관행도 무라타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됐다.

오시마 유키오(大島幸男)총무부장은 "특정 재벌에 속하지 않는 독립 부품업체들의 성장이 일본 산업계 전체를 지탱해주는 밑거름" 이라고 말했다.

교토=남윤호 특파원.양선희 기자 yhnam@joongang.co.kr>
도움:김재송 삼성요코하마연구소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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