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타는 돈줄 … 차베스 4선 꿈 흔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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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 북서부 푼토피호에 있는 아무아이 정유소에서 불이 나 39명이 사망하고 80여 명이 다쳤다. 최악의 정유소 화재로 꼽히는 이번 사태는 ‘석유 포퓰리즘’ 정책을 펼치는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4선 가도에 장애물이 될 전망이다. [푼토피호 로이터=뉴시스]
차베스

‘석유 포퓰리즘’으로 4선 고지를 넘보던 우고 차베스(58)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대선 레이스에 빨간불이 켜졌다. 무상급식 등 선심 복지정책의 든든한 화수분 노릇을 하고, 차베스 대통령의 권좌를 지탱해 주는 석유 시설들이 불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LA타임스(LAT) 등 외신들에 따르면 25일 오전 3시쯤(현지시간) 베네수엘라 북부 파라구아나 정유단지 내 아무아이(Amuay) 정유소에서 발생한 폭발사고로 하루 만에 39명이 죽고 80여 명이 다쳤다. 사고 원인은 가스 누출로 추정되고 있다.

 LAT는 “이번 화재가 발생한 곳은 국영석유공사(PDVSA) 소유의 정유소”라고 소개하며 “이번 사고가 10월 대선에서 주요 이슈가 될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차베스와 야권 단일후보인 엔리케 카프릴레스 라돈스키(40) 전 미란다 주지사의 격차도 줄어들고 있다. 지난 18일 여론조사기관 바리안자스 설문조사에서 차베스가 49.3%, 라돈스키가 47.5%를 기록해 격차가 1.8%포인트로 줄어들었다. 프레딕마티카 여론조사에서는 라돈스키가 48.3%로 차베스(43.9%)를 3%포인트 이상 앞섰다. 하지만 친정부 성향 매체들은 ‘차베스 20%포인트 우위’ 등의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이번 사고를 접한 노동계는 사고 원인이 정부의 실책에 있다고 주장했다. 현지 노동운동가인 이반 프레이츠는 “그동안 현장 노동자들이 사고 위험성을 꾸준히 알려 왔다”고 말했다. 석유공사 해직자단체(Gente del Petroleo)의 에디 라미레스 대표는 “지난 2년간 크고 작은 석유시설 사고가 자주 발생해 왔다”며 “하지만 라미레스 석유장관은 차베스 후보의 정치 행보나 따라다니고 있는 실정”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1999년 집권한 차베스는 그간 석유 수출로 인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반미 포퓰리즘’ 행보를 유지했다. 무상급식, 무상의료 등 수백억 달러가 드는 복지정책에도 끄떡 없을 정도다. 따라서 이번 화재는 차베스에게 최후의 자존심이자 지지 원동력을 무너뜨리는 재앙이나 다름없다. 차베스 대통령은 사고 직후 국영TV와의 인터뷰에서 “화재는 매우 고통스럽고 슬픈 일”이라며 “사고 원인을 철저히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사흘간의 애도기간을 선포하는 한편, 해외 석유시장을 안심시키려고 노력했다. 라파엘 라미레스 석유장관 겸 PDVSA 사장은 “정유소 내 생산시설에는 이상이 없고 수출 중단 계획도 없다” 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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