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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살리는 ‘호미하나’ 농법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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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5호 27면

영성이 고갈될수록 자연을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자연 속에서 신선한 에너지를 공급받는 것이다. 질서정연한 자연의 조화를 느끼면서 자신을 다잡기도 한다. 이들은 바람 길을 만들어 주는 나뭇잎,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는 나뭇가지들, 자연과 공생하는 풀벌레들의 움직임에도 그 나름의 흐름이 있음을 안다. 여기에서 희망을 발견한다.
얼마 전 목가적인 풍경이 그리워 청정 지역인 주암호 상류 지역을 찾았다. 잔잔한 호수에 비치는 하늘과 수면 가득히 번져나는 초록의 향연은 잠시 말을 잊게 만들었다. 수채화를 연상시키는 풍경이었다. 공기 또한 맑았다. 지인의 소개로 자연을 허투루 대하지 않는 농사꾼 이승렬씨를 만났다. 그는 주암호 구릉지에 자리 잡은 6만6000㎡ 감국(참국화) 밭에 ‘호미하나’ 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었다. 트랙터가 아닌 호미질로 밭을 간다.
“댐 건설과 담수로 인해 20여 년간 잠자고 있던 농토의 들풀을 제거하고 자생식물인 감국을 재배하고 있습니다. 트랙터는 많은 생명을 죽이지만 호미는 그렇지 않습니다. 호미질을 하면 옆에 있던 곤충들이 몸을 피하게 됩니다. 원시적이긴 하나 감국을 심는 데는 어려움이 없습니다.”
주변에선 그를 말렸다. “편한 방법을 택하라”는 충고였다. 그런데도 이씨는 감국밭에 인위적인 기술을 더하지 않았다. 친환경적인 연결고리를 중시했다. 감국을 들풀과 어우러지게 했다. 들풀과 뭇 생명을 중시하는 그의 삶은 이미 자연에 동화된 거나 다름없었다. 모든 생명의 소중함을 절절히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가 ‘죽임’의 농사를 지양한 건 건강 문제로 죽을 고비를 몇 차례 넘기고 나서였다. “세상을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면 심장이 더 뛰고 아팠습니다. 그때부터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미워하는 마음을 없애는 연습을 했습니다. 잘되지 않았지만 계속 하다 보니 자연을 새롭게 보는 눈이 열린 것 같습니다. 감국 농사는 제 마음과 생명을 살린 단초가 됐습니다.”
그러면서 지난해 거의 성체가 된 매미 한 마리를 위험에서 벗어나게 했던 사례를 소개했다. 석 자(尺) 높이의 감국 줄기 끝에 매달려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는 매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감국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버드나무에 매미를 올려 주었다.
“매미가 오른 땅을 쳐다보니 지진이 난 것처럼 여기저기 갈라져 있고 두더지가 들어간 땅굴이 보였어요. 매미는 땅의 진동을 느끼고 급히 땅 위에 올라 온 것이죠. 급하게 잡은 것이 감국 줄기였습니다. 매미를 손바닥 위에 올려 놓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 버드나무에 붙여주니 잎이 무성한 높은 곳까지 쉬지 않고 올라가더군요.”
이처럼 그는 호미하나 농법을 진행할수록 생명의 가치를 절실히 알게 됐다. 곤충과 땅속 지렁이에 이르기까지 생명의 신비가 있다고 보았다. 그가 감국을 선택한 것도 자연과 어우러진 농법이기 때문이다. 감국 농사는 농약·비료·퇴비가 필요 없다. 그는 감국 꽃차 한 잔을 따라주며 “어렵지만 이 길이 맞다는 지식인들에게 오히려 위로를 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차 한 잔 속에는 자연의 맑은 향기가 가득했다. 허리 굽은 호미하나 농법으로 가꾼 감국 꽃차의 향기는 자연을 섬기는 그의 마음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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