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화주의’ 시대 외교 해법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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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이달 초 방문한 베트남 하노이 시내 호안키엠 호수 주변. 20여 명의 젊은이들이 중국과의 해양 영유권 분쟁을 놓고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응우옌티탐 사회과학원 연구원은 “대학가를 중심으로 반중(反中) 분위기가 고조되고 거리에서 시위가 빈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에 대한 베트남의 반감은 뿌리 깊다. 1979년에는 커다란 희생을 치르며 중국의 침공을 막아냈다. 현안인 해양 영유권 분쟁에 대해서도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반중 시위대는 “비엔동(東海)은 베트남의 바다지. 중국의 남해가 아니다”고 외치며 중국대사관을 향해 행진했다. 베트남은 ‘위험 분산(hedging)’ 외교로 중국을 요리하는 데도 능숙하다. 최근에는 미국·러시아와의 군사 협력을 강화했다. 중국과의 자유무역협정(CAFTA) 발효를 앞두고 한편으로는 미국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체결을 추진하고 있다.

 베트남뿐만이 아니다. 중국은 남중국해에서 필리핀과 대치하고 있고, 일본과는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놓고 또다시 충돌했다. 항공모함 바랴크(Varyag)함 취역, 남중국해 싼사(三沙)시 출범, 만리장성 늘리기…. 중국과 국경을 마주한 14개 주변국들은 ‘중국 위협’을 느끼고 있다.

 주변국은 ‘신(新)중화주의’의 부상을 경계한다. 중국이 주변국가에 대해 우월성을 주장하고 지배를 정당화했던 과거 중화주의가 21세기에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는 우려다. “만약 제국 시대라면 도서(島嶼) 분쟁의 해결은 매우 간단했을 것”이라는 지난달 4일 중국 관영 ‘환구시보’의 사설은 중화사상에 대한 향수를 여실히 보여준다.

 서방세계 역시 중국의 팽창주의에 경계심을 갖는다. 딕 체니 전 미국 부통령의 안보담당 부보좌관을 지냈던 애런 프리드버그 프린스턴대 교수는 “중국 지도자들은 중국이 대외적으로 강력할수록 공산당 정권도 대내적으로 강력해진다고 믿는다”고 말한다. 동아시아에서 패권을 추구하지 않겠다는 중국의 주장은 ‘구두선(口頭禪)’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미국이 아시아로 돌아오는(Pivot to Asia) 정책을 취하면서 중국의 팽창주의와 미국의 ‘축의 이동’이 동아시아에서 부딪치는 모습이다.

 문제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 놓인 우리다. 그동안 이명박 정부는 한·미 동맹을 강조한 나머지 중국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였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는 “이명박 정부가 주장해온 한·미 가치동맹은 양국이 손잡고 자기식 사회주의를 하겠다는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중국과 한국이 멀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다.

 전문가들은 이제 ‘편가르기가 아닌 같이 가는 외교’로 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종욱 동아대 석좌교수는 “미국과 중국은 서로 갈등을 빚지만 파국으로 가지는 않는 ‘투이불파(鬪而不破)’의 관계”라며 “미국의 중국 견제 또는 포위 구도로 간주될 수 있는 전략적 몰입(strategic entanglements)은 자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략적 유연성을 가지라는 주문이다. 이동률 성신여대 교수도 “중국을 적으로 대하면 결국 ‘진짜’ 적이 될 것”이라며 “한·미 동맹과 한·중 동반자 관계에서 상호보완적 공간을 최대한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가운데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정착시킬 해법으로 ‘동아시아 다자안보협력 체제 구축’이 떠오르고 있다. 문정인 교수는 “중장기적으로 미국과의 양자동맹 틀에서 벗어나 공동 안보·집단 안보에 기초한 동북아 다자안보협력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베트남의 대표적인 중국 전문가인 당쏸타인 베트남 사회과학원 동북아연구원 부원장은 “지금은 중국만의 세기(China Century)가 아닌 아시아의 세기, 아시아·태평양의 세기”라며 “아시아의 평화 정착은 중국뿐 아니라 지역 내 모든 국가가 협력해 이뤄내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미국이냐, 중국이냐’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뛰어넘는 외교적 상상력을 발휘할 때라는 얘기다.

후원: 서울시·한국방문의해조직위·아모레퍼시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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