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 1kg 1만300원 VS 4900원 … 군산 가공업체 FTA 피해 첫 인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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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전북 군산에서 돼지고기 가공업을 하는 A사는 올 상반기 매출이 10% 넘게 줄었다. 연간 매출액 60억원가량에 종업원 15명인 A사는 돼지를 도축한 뒤 포장해 시중에 판매해왔다. 그런데 지난해 7월 1일 한국과 유럽연합(EU)의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면서 판매량이 줄기 시작했다. 사정은 올 들어 더 어려워졌다. 원인은 가격이었다. 올 상반기 기준 국산 삽겹살(냉동)은 1㎏에 평균 1만300원이었다. 그러나 EU산은 4900원으로 ‘반값’ 수준이었다. EU 돼지고기는 주로 독일·네덜란드·오스트리아 등에서 수입된다. 갑자기 경영난에 빠진 A사는 정부에 도움을 요청했다. FTA 피해를 봤을 때 구제하는 ‘무역조정지원’ 제도의 문을 두드린 것이다.

 지식경제부 산하 무역위원회는 22일 A사가 유럽산 돼지고기 수입 때문에 피해를 본 사실이 인정된다고 결정했다. 이는 한·EU 간 FTA로 국내 업체가 피해를 봤다는 정부의 첫 판정이다. 무역위는 수입품 때문에 6개월간 매출이 10% 이상 감소할 경우 피해 기업으로 지정한다. 위원회는 “FTA 발효 뒤 저렴한 유럽 돼지고기가 시장 점유율을 높이며 A사 매출·영업이익 감소에 영향을 줬다”고 판정했다. 주로 냉동이어서 가격이 저렴한 EU 돼지고기는 2010년 5.6%이던 점유율이 지난해 12%로 뛰었다.

 A업체는 이번 결정에 따라 정부로부터 3년간 운전자금(5억원 이내)과 시설자금(30억원 이내)을 3.1%의 금리로 빌릴 수 있게 됐다. 또 구조조정을 위해 4000만원 한도로 컨설팅 비용의 80%도 지원받는다.

 지경부는 향후 기업들의 구제 신청이 잇따를 것으로 전망했다. 그동안 피해 산정의 기준이 매출액 20% 감소였으나 지난달부터 10%로 완화됐기 때문이다. 다만 정부는 FTA를 빌미로 허위 신청을 하는 업체들을 막기 위해 심사를 강화할 계획이다. 매출액 감소와 FTA의 구체적 인과관계를 철저히 따진다는 것이다. 현재 위원회는 유럽 와인 때문에 매출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복분자주 업체를 포함해 3건의 신청에 대해 심사 중이다.

◆무역조정지원 제도=FTA 피해로부터 국내 업체를 보호하는 장치로 2007년 생겼다. EU·미국 등도 도입하고 있다. 기업이 구조조정을 통해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자금 대출과 경영 컨설팅 등을 지원한다. 전국 중소기업진흥공단에 신청하면 무역위원회가 피해 판정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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