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영희의 사소한 취향

아이들의 블록버스터 ‘로보카 폴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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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어느 토요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TV를 틀었다. 우연히 맞춰져 있던 채널 EBS에서 방영 중인 어린이용 3D 애니메이션을 멍하니 보다 ‘오오, 재밌잖아?’ 빠져들고 말았다. 작은 섬마을 브룸스타운에서 사건이 발생하고 누군가 위기에 처한다. 이들을 구하기 위해 리더 역할의 경찰차 ‘폴리’, 힘센 소방차 ‘로이’, 지혜로운 구급차 ‘엠버’. 재빠른 헬리콥터 ‘헬리’가 팀을 이뤄 나선다. 매회 10분짜리 어린이용 애니메이션 ‘로보카 폴리’다.

 뒤늦게 발견한 이 작품, 요즘 아동 애니메이션 시장의 ‘대세’란다. 떼쓰는 아이를 달래려 “자 뽀로로 봐야지” 하던 ‘뽀통령(뽀로로+대통령)’의 시대는 저물고, ‘폴총리(폴리+총리)’가 정권을 잡은 지 꽤 됐다. ‘로보카 폴리’는 지난해 2월 EBS에서 방송을 시작해 평균 시청률 2%대를 꾸준히 기록하고 있는 히트작이다. 아이 키우는 친구들을 만나 물었더니 “폴리 캐릭터 상품 사느라 가계 거덜 날 지경”이라는 한탄이 이어진다. 주인공이 넷이나 되니 세트로 갖추려면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거다. 그럼에도 ‘로보카 폴리’ 완구는 나오자마자 불티나게 팔려나가 한때 “폴리를 구하는 아빠가 진짜 아빠”라는 우스개까지 돌았다.

EBS 어린이 애니메이션 ‘로보카 폴리’.

 단순명료한 구성과 교훈적인 스토리를 내세운 그동안의 어린이 애니메이션에 비한다면 로보카 폴리는 조금 과장해 ‘아이들용 블록버스터’라 할 만하다. 평소에는 그냥 자동차인 폴리·로이·엠버·헬리는 위기가 닥치면 철컥철컥 몸을 바꿔 로봇으로 변신한다. 할리우드 영화 ‘트랜스포머’를 떠올리게 하는 설정이다. 이런 박진감 있는 구성 탓에 아이들뿐 아니라 엄마까지 함께 즐길 수 있다는 게 이 작품의 강점이다. 아이랑 보고 또 보다 어느덧 팬이 됐다는 30대 초반 엄마의 증언. “운전하다 옆 차로에 앰뷸런스가 지나가는데 나도 모르게 ‘어, 엠버 어디 가니?’ 하고 있더라니까.”

 국내업체 로이 비쥬얼이 제작하고 현대자동차가 제작지원한 ‘로보카 폴리’는 후발주자로서 뽀로로가 꽃피운 창작 어린이 애니메이션 시장을 착실히 다져가고 있다. 심지어 요즘 EBS의 ‘아동용 애니메이션 4대 천왕’으로 불리는 ‘뽀롱뽀롱 뽀로로’ ‘로보카 폴리’ ‘꼬마버스 타요’ ‘부릉부릉 부르미즈’가 모두 ‘한국산(産)’이라는 사실은 뿌듯하기까지 하다. 과거 일본·미국 애니메이션의 하청 제작이 주를 이뤘던 국내 애니메이션 제작산업 구조가 독자적인 스토리텔링을 갖춘 창작 제작 쪽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기분 좋은 신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