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은 희망의 도구인가? [2]

중앙일보

입력

‘정보통제 강국’ 되려고 하는가?

지난 4월 26일 열린 ‘인터넷 내용등급제 반대 시민단체 기자회견’.64개 단체가 참여했다(웹진 ‘대자보’ 제공 사진)

권력은 특정한 사상과 표현을 차단하기 위해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한다. 하나는 말을 못하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듣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물론 두 가지를 동시에 병행하기도 한다. 이는 광장을 폐쇄하고,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게 하는 계엄령 방식이다. 입과 귀를 틀어막는 무지하지만 강력한 방법이다.

그러나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입과 귀를 틀어막기란 불가능하다. 더욱이 네트에 연결된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 생각을 쏟아 넣을 수 있는 인터넷의 경우 권력의 통제와 개입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리치는 이발사들이 도처에서 출몰한다. 포르노도, 정치적 폭로도, 확인 안된 유언비어도 모두 인터넷에서 시민권을 획득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노골적인 개입 말고 좀 더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감시와 통제를 모색하고 있다. 인터넷 등급제나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규제는 눈에 안 보이게 전달자와 수신자 사이를 파고들어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을 뒤틀어 놓는 방식이다. 과거에는 탱크를 앞세워 무력으로 사람들이 모이지 못하게 했다면, 앞으로는 기술적으로 사람들의 생각과 만남을 방해하고 제한하는 디지털 계엄령이 시행될지도 모른다. 최근 정부가 검토 중인 인터넷 내용등급제는 특정한 단어나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는 홈페이지에 대한 접근을 기술적으로 막아버리는 방식이다. 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감시와 통제임에 분명하다.

최근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불건전 사이트 10만8천 건의 목록을 공식적으로 배포하면서 이를 차단하도록 종용하고 있다.

이유는 공공의 안전이나 청소년 보호,미풍양속을 지지하기 위해서다. 이처럼 대상이 불분명한 규제는 당연히 자의적인 통제로 이어진다. 그것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위협하게 될 것이며, 결국 정치적인 통제로 확장될 것이 뻔하다.

현재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통해 도입하려는 인터넷 내용등급제는 내용 제공자가 자체적으로 등급을 명시하도록 만들고, ‘검열 소프트웨어(censor software)’를 사용해 특정 등급의 정보를 차단하겠다는 발상이다. 이들은 네트의 오물들을 피해나가고 청소년을 유해물로부터 보호하겠다는 갸륵한 주장을 펴지만 이러한 발상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가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이 없는 듯하다.

국가 단위 차단·규제는 효과 없다

이러한 등급제가 실효를 거둘 수 없는 몇 가지 단순한 근거를 들어보자. 첫째, 전세계 네트워크의 네트워크로 이루어진 인터넷에서 단위 국가의 규제는 그다지 큰 효력을 얻을 수 없다. 국내의 포르노 사이트와 음란물을 단속하면 거꾸로 해외 포르노물의 주가만 올리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발빠른 포르노 업자들은 해외 서버의 호스팅을 활용해 망명 인터넷 포르노를 운영할 것이 뻔하다.

둘째, 차단할 단어 목록 데이터베이스를 작성하고 이를 효율적으로 차단해주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사회적으로 보급한다고 가정하자. 음란한 단어가 사용된 문장에서 맥락을 판단하지 못하는 소프트웨어는 무차별적으로 해당 단어가 사용된 문장과 그것이 게재된 웹 페이지를 걸러낼 것이다. 맥락을 읽지 못하는 소프트웨어는 음란물과 동시에 음란물을 비판하는 문장까지 다 걸러낼 것이다. 그야말로 목욕물과 아이를 함께 버리는 꼴이다.

셋째, 컴퓨터 사용 차원에서 아이들의 실력을 좇지 못하는 부모가 어찌 차단 소프트웨어를 운영해 청소년을 보호하겠다는 말인가. 당치 않은 생각이다. 부모가 어렵게 차단 소프트웨어 설치 법을 배워 아이들의 컴퓨터에 깔아놓으면 아이들은 1분도 안 걸려 이들 소프트웨어를 지우거나 무력화시킬 것이다.

넷째, 이러한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 어렵게 새로운 소프트웨어와 차단 기술을 개발했다고 가정하자. 이것이 가장 우려되는 경우다. 내용 제공자와 검열기구, 소프트웨어 제작 업체가 등급제를 특정한 정보와 지식에 대해 적용한다면 실제로 네트에 대한 사상 통제가 이루어질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소프트웨어 기술로는 실현되기 어려운 꿈같은 이야기에 불과하겠지만 만의 하나 기적처럼 이런 차단 기술을 개발했다고 하자. 미국의 법학자 레식(Lawrence Lessig)이 이야기하듯 코드에 입각한 통제가 실현된다고 가정하면 정말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운영체제나 브라우저 자체에 특정 단어를 걸러내는 기능을 심어버리면 코드를 활용한 통제가 이루어질 것이고, 그러면 대한민국은 말 그대로 ‘정보통제 강국’이 될 것이다. 대한민국이 정보통제 강국의 꿈을 실현하면 정보 통제를 제대로 못하는 후진 나라들에 이러한 기술을 수출해 많은 돈을 벌어 그토록 그리던 정보강국의 꿈을 실현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백욱인(서울산업대학교 교수·사회학)
자료제공 : i-Weekly(http://www.iweek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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