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일기] 혼란스런 기업경영자들

중앙일보

입력

지난주 중반이후 경제 개혁 문제를 놓고 혼란스러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3일 민주당 강운태 제2정책조정위원장은 무역업계와 간담회에서 "종합상사와 건설.해운.항공운송 등 4개 업종에 대해선 부채비율 2백% 적용 기준을 탄력적으로 운용키로 했다" 고 말했다.

이에 화답하듯 이튿날 아침 진념 경제부총리는 고려대경제인회 초청 강연에서 "외환위기 이후 새로 생긴 기업관련 규제를 전반적으로 재검토하겠다" 고 말했다.

재계는 크게 환영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가 "정부가 왠 일" 이냐고 할 정도였다. 경제가 어려우므로 정부가 기업의 투자의욕을 북돋우기 위해 여러가지 규제 완화를 검토하는 것으로 비춰졌다.

이런 분위기는 7일까지 이어지는 듯했다. 민주당 최고위원 워크숍에서 '개혁 피로감' 을 이유로 개혁의 매듭 내지 정비론이 제기됐다.

같은 날 최대 경제단체인 대한상공회의소 박용성 회장이 "더 이상 경제개혁 과제를 만들지 말고 기존 개혁입법이나 제도를 일관성있게 추진해도 충분하다" 고 주장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부설 한국경제연구원의 좌승희 원장도 1998년에 폐지했다가 부활한 출자총액제한(순자산의 25%)제도를 예로 들며 "기업이 경쟁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법을 재정비해야 한다" 고 거들었다.

그러자 이튿날 청와대는 "지금의 개혁을 더욱 충실하게 지속할 필요가 있다" 며 '개혁 지속' 을 거듭 강조했다. 이에 보조를 맞춘 듯 9일 공정거래위원장과 청와대 경제수석이 한목소리로 중단없는 구조조정과 개혁을 강조했다.

그런데 10일 오후 여당인 민주당에선 다른 목소리가 나왔다. 강운태 제2조정위원장은 "수익성이 있고 이자보상배율이 1이 넘는 기업(영업이익으로 대출 이자를 갚을 수 있는 곳)에 대해 부채비율과 출자총액제한을 완화하는 것을 탄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고 말했다.

지난 3일부터 거의 날마다 달라지는 발언과 분위기에 기업 경영자들은 헛갈린다. 두사람만 모여도 경제 걱정을 하는 마당에 기업 투자와 직결된 중요한 문제를 놓고 이런 밀고 당기기를 할 때가 아니다. 경제주체들은 바로 이런 소모적인 공방에 피로감을 느낀다.

송상훈 기자 mode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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