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경력 교사, 대입 문제 보더니 '진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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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생인 고려대 1학년 김모(19)씨는 지난해 대입 수리논술을 떠올리면 지금도 식은땀이 흐른다. 중·고교생 때 수학만큼은 누구보다 자신 있어 했던 그였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수리논술 5개 문제 중 타원 넓이를 구하는 문제는 손도 못 댔다. 김씨는 “알고보니 대학수학 미적분 시간에 배운 극좌표 적분법을 적용한 문제였다”며 "논술문제가 대학 학과시험보다도 어려웠던 것 같다”고 말했다.

연세대 1학년 박모(19)씨도 지난해 수리논술 네 문제 중 두 개밖에 풀지 못했다. 그는 “고교 2학년 때부터 수리논술을 준비하느라 학원에서 대학수학을 배우지 않았다면 떨어졌을 것”이라며 “수능 수리 1등급 친구들이 논술은 한 문제도 풀지 못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대입 논술문제가 어려워 수험생과 교사들이 준비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수험생은 물론 교사들조차 논리적 사고력을 평가한다는 논술시험이 1980년 초까지 진행됐던 본고사만큼 어렵다고 호소하고 있다. 자연계 학생들에겐 대학 과정의 고난도 수학을, 인문계 학생들에겐 해독이 난해한 외국 학자 논문을 지문으로 내는 대학까지 있다는 것이다.

 본지가 교육시민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공동대표 윤지희)과 서울 소재 10개 대학의 지난해 수리논술 84개 문항을 분석해보니 대부분 풀이과정과 답을 쓰는 본고사 유형이었다. 출제 범위도 고교 과정을 벗어나 대학 수준이 많이 나왔다. 서울대·연세대·한양대는 대학수학 문항 비율이 100%였다. 서울대는 해석학의 특이적분을, 연세대는 함수 오목과 볼록과 관련한 미적분학 문제, 한양대는 정수론의 페르마 정리 등을 문제로 냈다. 공대생들이 1, 2학년 때 배우는 내용이다. 서강대·경희대·고려대 등도 대학수학 문제를 출제했다. 전체 10개 대 84개 문항 중 46개(54%)가 이런 문제였다.

 전국수학교사모임 최수일(전 세종과학고 교사) 수학교육연구소장은 “30년 가까이 수학만 가르친 나도 풀기 어려운 문제가 많다”며 “대학은 변별력을 위해 어렵게 낸다고 하지만 학교에서는 가르칠 여력도, 시간도 부족해 학원만 돈을 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오성근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입학지원실장은 “논술 경쟁률이 최고 150대 1까지 되기도 하는데 쉽게 내면 입시를 진행할 수 없다. 대학이 우수 학생을 뽑으려 경쟁하는 것을 제한하긴 힘들다”고 말했다.

 16일 원서접수가 시작된 수시모집에 고려대 1351명, 연세대 1160명 등 30개 대학이 논술로 1만7000여 명을 뽑는다. 서울대는 정시에서만 논술을 치른다.

◆특별취재팀=성시윤(팀장)·천인성·윤석만·이한길·이유정 기자, 박소현 인턴기자(이화여대 언론정보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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