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 반도체 1조8천억원 외자 유치 계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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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단이 8일 여신 만기 연장 등 5조1천억원 규모의 채무 재조정안을 확정함에 따라 하이닉스반도체(옛 현대전자) 는 일단 회생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하이닉스반도체는 이같은 금융 지원을 발판으로 1조8천억원의 외자를 유치할 계획이다. 그러나 외자유치가 실패하면 채권단의 지원이 모두 백지화된다.

금융계는 이 경우 하이닉스가 법정관리로 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외자유치에 성공한 뒤에도 하이닉스가 분명히 살아날 수 있느냐다. 계속 하락해온 반도체 가격이 언제 어느 수준으로 회복되고, 적절한 투자를 통해 경쟁력있는 제품으로 장기적 수익성을 확보하느냐가 회생의 관건이다.

◇ 외자유치는 잘 될까〓해외 투자자들은 하이닉스가 여신의 만기 연장과 외자유치만으로 회생할 가능성이 얼마나 있는지 궁금해 한다고 최근 해외를 다녀온 한 재계 인사는 전했다. 해외 투자자들은 여신의 만기 연장 외에 채권단의 출자전환 등 추가 지원이 있어야 외자유치가 쉬울 것으로 본다는 얘기다.

이와는 달리 하이닉스의 재무 자문사인 미국 샐러먼 스미스바니(SSB) 는 성공적인 외자유치를 장담한다. 채권단이 내년 상반기 신속인수 회사채 상환용으로 1조원의 전환사채(CB) 를 인수, 인출이 제한된 계좌에 넣어주고 나머지 여신도 만기를 연장해 주면 외자유치는 가능하다는 것이다.

"해외 투자자들이 자신이 투자한 자금이 차입금 상환용으로 사용돼선 효과가 없다고 생각한다" 며 1조8천억원의 외자 유치분이 하이닉스의 경쟁력 강화에만 쓰인다는 보장이 있으면 외자유치는 가능하다는 게 SSB측 주장이다.

하이닉스와 SSB측은 다음주부터 외자유치를 위한 투자설명회를 열 예정이며 이달 중 10억달러의 해외주식예탁증서(DR) 와 3억7천만달러 규모의 고수익채권(하이일드본드) 발행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현대 계열사들이 보유한 지분(약 20%) 을 해외 투자자에게 매각, 계열분리도 함께 추진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채권단도 이달 중 1조원 규모의 3년만기 CB를 인수할 예정이다.

채권단 관계자는 "SSB가 외자유치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기 때문에 SSB의 그룹사인 시티은행도 하이닉스 CB 인수에 참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고 밝혔다.

SSB로서도 이번 외자유치에 실패하면 앞으로 국제 영업에 큰 타격을 입을 것이므로 전력을 기울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계 관계자는 SSB가 이번 외자유치를 위해 이미 두세개 대형 투자가로부터 투자 약속을 받은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 외자유치가 되면 살아날 수 있나〓세계적으로 유명한 반도체 애널리스트인 SSB의 조너선 조셉은 두달 전 한국을 방문해 하이닉스의 경쟁력에 대해서도 긍정적 평가를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SSB와 하이닉스는 당분간 반도체 경기가 회복되지 않는다는 지극히 보수적인 전제 아래 회생계획을 짰다. 하이닉스는 당초 반도체 수출 가격이 2분기에 바닥을 치고 점차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이번 SSB의 안은 올해부터 2003년까지 반도체 평균 수출가격이 개당 2.65달러(64메가 D램 환산가격 기준) 를 유지한다는 최악의 상황을 전제로 자금 계획을 짰다. 나름대로 최악의 상황에서도 하이닉스가 되살아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SSB측은 "하이닉스가 내년에는 차입금 상환 등 여유자금이 수백억원 수준으로 줄어들지만 2003년에는 영업이익 등을 바탕으로 1조7천억원의 여유자금을 확보할 것" 이라고 주장했다.

채권단 일각에선 5조원에 이르는 여신 만기를 2003년 이후로 넘긴 만큼 외자유치가 성사되고 정상적인 영업이익만 낸다면 부도 위험은 거의 없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증권업계에선 회의적 견해도 나온다. SK증권 전우종 기업분석팀장은 "12조원에 가까운 부채를 짊어진 상황에서 1조8천억원 정도가 들어온다고 해서 장기 생존을 확신하기는 어렵다" 며 "2조원 정도의 출자전환이 있어야 적정 차입금 수준을 맞출 수 있다" 고 주장했다.

그는 "반도체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해 64메가 D램의 경우 2달러 안팎으로 떨어진 데다 하반기 상승도 낙관할 수 없는 상황" 이라고 덧붙였다.

◇ 금융 지원의 걸림돌〓은행과 투신권이 힘겨루기 속에 분담안을 정했지만 투신권이 인수할 회사채 6천8백억원 중 6천억원에 대한 서울보증보험의 보증 문제가 막판 걸림돌이다.

서울보증은 공적자금이 투입돼 예금보험공사와 경영 정상화를 위한 양해각서(MOU) 를 체결했는데 부실의 원인이 된 회사채 보증은 신규 발행의 경우 더이상 하지 않도록 돼있다. 하반기 만기가 돌아오는 서울보증 회사채 6천억원을 다시 발행하는 것으로 보면 차환(借換) 이 돼 별다른 문제가 없다.

그러나 하반기 만기가 닥치는 회사채는 회사채 신속인수 제도로 차환이 이뤄진다는 점에서는 신규 발행으로도 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서울보증 박해춘 사장은 "외자유치가 걸린 만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며 "예금보험공사.금감위와 MOU 해석에 대한 협의가 끝나는 대로 결정을 내릴 것" 이라고 밝혔다. 서울보증보험의 보증 문제는 정부의 의지에 따라 쉽게 해결될 수 있다는 얘기다.

김원배.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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