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창업 … 자영업자 증가 폭 10년 만에 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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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용박람회장을 찾은 한 구직자가 게시판에 붙은 채용공고문을 들여다보고 있다. [중앙포토]

소상공인진흥원 서울중부센터엔 최근 자금 지원을 받을 수 있느냐는 문의가 부쩍 늘었다. 주로 9월께 창업하려고 준비 중인 사람들이다. 이화진 서울중부센터 상담사는 “취업이 안 되다 보니 요즘 경기가 썩 좋지 않은데도 창업을 하려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소상공인진흥원 정책자금은 최근 늘어난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지난 7월 2일부터 신청받은 우선지원자금 775억원은 단 이틀 만에 동났다.

 ‘BBQ 치킨’으로 알려진 프랜차이즈 업체 제너시스는 14, 16일 브랜드별 창업설명회를 열었다. 원래 8월은 휴가철이라 설명회를 생략하지만 올해는 창업준비자 수요가 꾸준해서 처음 열었다. 16일 BBQ 창업설명회를 신청한 8팀은 대부분 퇴사 이후를 준비하는 50, 60대다. 이 회사 박승신 대리는 “창업비용이 3억~4억원 들지만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돼 은퇴자들이 선호한다”고 말했다.

 자영업자 수가 가파르게 늘고 있다. 16일 통계청의 7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자영업자 수는 19만6000명 늘었다. 7월 한 달 늘어난 취업자 수(47만 명)의 42%를 차지한다. 2002년 4월(22만 명) 이후 10년3개월 만에 최대 증가폭이다. 2006년 5월 이후 계속 줄던 자영업자 수는 지난해 8월 증가세로 돌아선 뒤 12개월 연속 플러스를 기록했다.

 자영업자가 늘어나는 건 베이비붐 세대(1955~63년 생) 은퇴와 맞물려 있다. 20, 30대 일자리는 줄어드는데 50대와 60대 이상 취업자 수는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달 역시 50대는 27만5000명, 60대 이상은 25만1000명 취업자가 늘었다. 새로 취업할 곳이 마땅찮은 은퇴자들이 퇴직금으로 창업에 나선 경우가 상당수로 추정된다.

 이들은 주로 도·소매업과 숙박·음식점업, 운수업 등 손쉽게 창업할 수 있는 업종에 뛰어든다. 지난 7월엔 이 세 업종의 취업자 수가 10만 명 증가했다. LG경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이들 업종은 취업자 1인당 벌어들이는 부가가치액이 가장 낮은 산업에 속한다.

 문제는 소비 위축으로 내수경기가 둔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경쟁이 심한 상황에서 수익성이 떨어져 버티지 못하고 퇴출되는 자영업자가 늘 수 있다. 자영업자가 은행에서 빌린 빚이 갈수록 늘고 있는 것도 걱정이다. 손민중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자영업자가 늘어도 너무 많이 늘었다”며 “덕분에 전체 취업자 수가 늘었지만, 내수가 어렵고 개인 사업자 부채 규모도 커서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비교적 괜찮은 일자리로 꼽히는 제조업 취업자 수가 7월에 ‘깜짝 증가세’를 보였다는 점이다. 지난해 8월 이후 계속 줄던 제조업 취업자 수는 1년 만에 3만4000명 증가세로 돌아섰다. 자동차(3만3000명)·전기(3만2000명)·전자(2만5000명) 등의 분야에서 취업자가 늘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특히 300인 이상 제조업체의 상용직에서 취업자 수가 늘어나는 추세다.

 다만 왜 제조업 고용이 갑자기 살아났는지는 미스터리다. 지난해 7월 취업자 수 증가세가 주춤했던 게 ‘기저효과’로 나타났을 걸로 추정할 뿐이다. GS칼텍스(58→60세), 포스코(56→58세) 등 일부 대기업이 정년을 늘린 게 영향을 미쳤을 거란 분석도 나온다. 김천구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제조업 생산이 위축되는 가운데도 취업자 수가 큰 폭으로 늘어나 의외”라며 “하반기 경기가 예상보다도 좋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증가세를 계속 이어갈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고용통계의 취업자 수입을 목적으로 일주일에 한 시간 이상 일한 사람. 가족이 운영하는 사업체에서 주당 18시간 이상 무급으로 일했거나, 직업이 있지만 일시 휴직한 경우도 포함된다. 매월 15일 통계청이 3만2000가구를 표본 조사해 집계한다. 군인이나 교도소 수감자, 전투경찰은 조사대상에서 제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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