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대선 주자들, 연간 6000만 건의 건강보험 민원을 아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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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신성식
사회부문 선임기자

한국의 건강보험은 세계적인 자랑거리다. 짧은 연륜(35년)에도 불구하고 100년 사회보장의 역사를 가진 나라 못지않게 의료안전망 역할을 거뜬히 한다. 건강보험료 부담액은 선진국의 절반이 안 된다. 우리의 건보 제도는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부러워하고 베트남·네팔 등 개발도상국의 벤치마킹 대상이 된다. 겉으로 화려해 보이지만 여러 군데 곪아 있다. 가장 큰 약점은 보험료 부담의 형평성이다. 5월 초 인천의 한 건보공단 지사를 찾았을 때 민원인들이 “소득이 없는데 왜 이리 건보료가 많으냐” “건보료를 체납했다고 출가한 딸아이 월급까지 압류하느냐”고 불만을 쏟아냈다. 지난해 이런 불만이 6358만 건에 달한다.

 이들의 대다수는 지역가입자다. 근로소득의 5.8%(절반은 회사 부담)를 건보료로 내는 직장가입자와 달리 지역가입자는 사업·임대·금융 등 종합소득에다 재산·자동차에도 건보료를 낸다. 미성년 자녀에게도 ‘가구원 건보료’를 매긴다. 소득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드니 ‘재산이 이렇고 차를 굴리고 식구가 몇 명이니 수입은 이 정도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진짜 소득이 없는 은퇴자·실직자·노인 등은 억울하기 그지없다. 서울에 106㎡ 아파트가 있으면 건보료가 20만원을 훌쩍 넘는다. 지역가입자 보험료 총액은 전체의 20%밖에 안 된다. 소득 축소의 대명사였던 의사·변호사 등 고소득 전문직은 이미 직장가입자로 전환했다.

 지금의 지역가입자 대부분은 사회적 약자들이다. 이들이 장사하는 데 쓰는 1t 트럭, 반지하 전세방 보증금, 노인의 주거용 아파트 한 채에까지 건보료를 물린다. 직장가입자는 월급에만 물린다. 일용직 근로자나 동네 수퍼 같은 영세 자영업자들의 소득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세계 최고의 정보기술(IT)로도 따라잡지 못하는 마당에 언제까지 이 문제를 들어 이들의 건보료 고통을 방치할 수는 없다.

 건보공단은 최근 직장·지역가입자 모두 소득에만 건보료를 매기는 ‘원샷 개혁’을 제안했다. 재산·자동차 건보료를 폐지하되 부가세의 0.51%포인트를 거둬 충당하자고 한다. 한꺼번에 그리 가기는 어려울 수 있다. 대형승용차를 제외한 차량에 건보료를 매기지 않거나 일정액 이하의 집이나 전세보증금을 먼저 제외하는 방안도 있다. 소득이 없거나 일정하지 않은 은퇴자나 일용직 근로자한테는 일정액의 기본보험료만 매길 수도 있다.

 여야 대선주자들은 폼 나는 복지확대 공약만 쏟아내지 말고 건보료에 눈을 돌려야 한다. 여유 있는 사람이 좀 더 부담하더라도 사회적 약자의 고통을 더는 대타협안을 찾아보자. 이런 게 진정으로 국민의 복지를 위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