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는 곧 지금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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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벽두에 이루어진 인터넷 기업 AOL과 미디어 제국인 타임워너의 합병은 새 천년의 도래를 상징하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터너(T. Turner)가 누구인가. 시대의 반항아로 CBS, NBC, ABC 등 미국의 주류 미디어의 독점에 대항해 M&A를 시도하다 실패하자 뉴스 전문 케이블 TV인 CNN을 창설해 방송계의 역사를 바꾼 인물이다.

하지만 지난 세기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를 움직이는 인물’의 선두를 달리던 그도 뉴미디어의 거센 격랑에는 역부족이었던 듯하다. 아들 뻘 되는 AOL의 회장 케이스(S. Case) 옆에 않아 합병에 조인하는 모습은 새 천년의 변화를 그대로 축소시켜 보여주는 듯 했으니 말이다.

최근 약간의 삐걱거림이 있지만 이런 시대 흐름에 발맞추어 우리나라의 젊은이들도 CIT(Communication & Information Technology) 관련 산업으로 과감히 뛰어들고 있다. 오죽하면 결혼의 대상으로 전통적인 인기 직종인 의사나 변호사를 제치고 벤처기업 종사자가 가장 선호되고 있을까.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 우리 삶의 한가운데에서 혁명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전인미답의 21세기 지식정보사회는 그 선점 여부에 성패가 달려 있다.

예컨대 소프트뱅크의 설립자 손정의의 경우를 보자. 그는 창업식장에서 2명뿐인 종업원을 모아놓고 사과 궤짝에 올라서서 ‘이 회사의 매출을 10년 내에 1조로 올리겠다’고 공언했다. 의욕적인 비전이기는 하지만 하도 황당해서 2명의 종업원이 며칠간 출근하지 않았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지금 孫회장은 수십 조에 달하는 자산을 일구고 있을 것이다. 이는 미래를 투시하고 선점한 결과다.

이런 사례는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도 볼 수 있다. 토플러의 지적이기도 한데 ‘한국이 문화적으로 일본보다 정보화를 위한 인프라 구축이 잘되어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지금은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겠지만 지난 1995년 당시만 해도 토플러의 이러한 지적에 반신반의할 수밖에 없었다.

예컨대 재택 근무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보자. 미국의 경우 임금노동자의 약 31%가 집에서 인터넷을 활용해 일을 하는 재택 근무자(Portfolio Worker)다.

이런 추세의 증가는 미국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라도 정보화가 진행될수록 활성화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일본은 지난 세기 근대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일터인 직장은 상당히 쾌적한 노동환경을 갖추었지만 삶터인 가정은 너무 협소해 멀티미디어 시스템을 장착하기조차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일은 직장에서 하고 집은 쉬는 곳이라는 산업사회적 전통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한국인들은 무리한 대출을 받더라도 번듯한 내 집을 마련하려는 성향을 지녔기에 비교적 넓은 주거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따라서 이 시대가 요구하는 일터와 삶터의 합일(合一), 즉 안방에서 건넌방으로 출근하는 재택근무가 상대적으로 용이한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재택근무에 대해서 생소해 하거나 모르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내 생활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전문가가 비교적 귀했던 지난 근대 산업사회에서 고급 지식과 정보를 생산해내는 교수의 사회적 지위는 꽤 괜찮은 편이었다. 한 학기 세 과목 정도를 가르치고 한두 편 정도의 학술논문만 제출하면 시공의 제약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웠다.

출퇴근 시간이 따로 없고 연구실을 사용하든 집에서 작업을 하든 통제하는 사람이나 제도가 없다. 소기의 계약-강의와 논문 제출-을 이행하는 것 이외의 통제 장치가 필요 없는 것이다.

이런 대학 교수의 삶이 앞으로는 다른 많은 부문의 종사자들에게도 적용될 것이다. 21세기를 CIT와 전문가의 시대라고 본다면 말이다.

사람들은 좋은 직업을 갖고 훌륭한 경력을 쌓고자 한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을 얻기 위해서는 의욕에 앞서 많은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변화한다는 것, 기존의 생활과는 질적으로 다른 생활 양태가 필연적으로나 우연히 다가오고 있다는 것, 바로 이 사실을 명확히 인식하고 거기에 대비해야 하는 것이다.

공성진(한양대 교수·미래학)

자료제공 : i-Weekly(http://www.iweek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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