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빚어내는 풍경화적 세계

중앙일보

입력

중견 사진작가 민병헌(46) 씨가 인체로 카메라를 돌렸다. 서울 청담동 카이스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재개관 기념 초대전에 걸린 80여점의 흑백작품은 주로 남녀의 누드다 (5월 12일까지) .

새로 시도한 '보디(Body) ' 연작은 풍경화와 같은 느낌을 준다. 구체적인 이미지보다 인체가 빚어내는 선의 아름다움에 초점을 맞춘 데다 안개에 휩싸인 듯 흐릿하게 처리했기 때문이다.

인체의 일부를 근접 촬영한 것들은 어느 부분인지조차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피부는 사막처럼 보이기도 하고 체모가 풀처럼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가 동성애적으로 밀착해 있거나 아예 성기를 드러낸 작품들도 있지만 음란하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민병헌의 조명과 인화작업은 노골적인 섹스의 성격을 약화시키고 마침내 사라지게 한다. 작품은 결국 추상적이거나 베일에 가려진 이미지로 변모한다" 는 프랑스 미술평론가 이브 미쇼(파리1대학 교수) 의 설명이 설득력있다.

작가 또한 "자연이나 인체도 자욱한 안개나 어둠 속에 감춰져 있는 희미한 이미지들이 오히려 더 묘한 관심을 촉발시키지 않느냐" 고 묻는다.

남성 동성애를 연상시키는 장면이 작품의 반수를 넘지만 작가는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것은 아니다" 고 말한다.

풍경을 바라보듯이 몸과 몸이 만나 이뤄내는 선을 감성적이고 탐미주의적으로 담아냈을 뿐이다. 작가는 그동안 잡초.안개.하늘 등의 풍경을 담은 작업을 주로 해왔다.

그는 미국 LA의 사진전문 '잰 케스너' 화랑과 프랑스 파리의 '보드앵 르봉' 화랑의 전속작가로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02-511-0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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