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는 부전승에 방점 찍은 위대한 전쟁철학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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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2호 12면

싸움, 즉 전쟁은 인류 생존사의 지울 수 없는 흔적이다. 까마득한 옛날부터 현재 팽팽하게 붙고 있는 시리아의 정부군과 시민군 사이의 교전까지 우리는 늘 싸움이라는 길고 모진 인류 유전형질의 무한한 펼쳐짐을 목격한다. 그 싸움에 얽힌 여러 가지 인류의 사색과 모색에 아주 정갈한 빗질을 해댄 사람이 있으니, 그 이름 바로 손자(孫子)다. 2500여 년 전 중국이라는 시공의 무대에 출현해 동서양을 통틀어 아무도 그에 비견할 수 없는 전쟁철학의 큰 줄기를 붙잡아 일으킨 사람이다.

중앙SUNDAY 연재 ‘손자병법으로 푸는 세상만사’ 책으로 낸 노병천 박사

그의 전쟁철학은 얄밉도록 정갈하다. 오늘날의 여러 싸움 유형에 대입해도 즉답(卽答)이 자판기에서 청량음료 떨어지듯 덜컥 손에 잡힌다. 그만큼 그는 전쟁에 관한 한 지혜의 날카로운 결정(結晶)이다. 그의 정신세계를 오래도록 파고들어간 사람이 있다. 중앙SUNDAY에 지난해 말부터 올해 6월까지 30회에 걸쳐 ‘손자병법으로 푸는 세상만사’를 연재한 한국전략리더십연구원장 노병천(사진) 박사다. 그가 최근 본지에 연재했던 내용을 다시 정리해 서른과 마흔 사이 인생병법이라는 책을 냈다. 그로부터 손자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손자가 말하는 전쟁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무엇인가.
“인류의 역사에서 전쟁을 피할 길은 없다. 어떻게 해서든지 전쟁은 반드시 일어나고 마는 게 인류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얻은 교훈 중의 으뜸이다. 손자 또한 전쟁은 피할 길이 없다고 봤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게 전쟁이라면 지혜롭게 그를 겪어내면서 이겨야 할 것 아닌가. 손자의 모색은 그에 맞춰져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손자는 피할 수 없는 전쟁이라면 그에 지혜롭게 임하되 결국 싸우지 않고서도 이겨야 한다고 가르쳤다.”

-싸우지 않고서도 이기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런 개념이 손자병법의 핵심이다. 이른바 ‘부전승(不戰勝)’이다. 손자병법의 모든 내용은 총 6109개 글자로 이뤄져 있다. 그 글자에 손자는 아주 지혜롭게 전쟁의 모든 핵심 개념을 담아 설명하고 있다. 방대한 양은 결코 아니지만, 의미가 깊어 내용이 방대해 보이는 게 특징이다. 그 6109개 글자의 대표선수가 있다. 바로 ‘온전하다’는 뜻의 ‘전(全)’이라는 글자다. 피를 튀기고, 순식간에 많은 생명이 목숨을 빼앗기는 전쟁의 마지막 목표는 제 것을 다치지 않는 ‘전’이라는 얘기다. 종국에는 상대에게도 커다란 상처를 남기지 않으면서 싸움의 갈등적 국면을 풀 수 있는 방법까지 말하고 있다. 요즘 말로 하자면 바로 상생(相生), 즉 윈-윈의 게임을 추구하라는 얘기다.”

-싸움에 관한 철학은 어떻게 보면 공자(孔子)도 펼쳤다. 그러나 그는 싸움을 피하는 방법을 설파했다. 손자보다 한 차원 위의 사상가로 볼 수 있나.
“단지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만을 말했다면 손자를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역시 손자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부전승’의 원리에 방점을 찍은 사람이다. 공자는 그야말로 위대한 사상가이지만, 손자 역시 싸우는 방법과 그 기술의 서술에 그치지 않고 싸우지 않으면서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을 말하고 있다. 역시 위대한 사상가로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손자병법이 반드시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단점을 꼽으라면 어떤 게 있을까.
“의도한 바는 아니겠으나, 손자병법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사람이 냉혹해지며, 계산적으로 변한다. 예를 들면 오(吳)나라 왕 합려(闔閭)에게 자신의 재능을 선보이기 위해 궁녀를 상대로 전술을 시범할 때 손자가 명령을 어겼던 궁녀들을 즉석에서 죽여버렸던 경우가 대표적이다. 냉혹함의 단면이 그대로 나타난다. 아울러 전략의 개념을 충실하게 표현하면서 전쟁터에서 결국 승부를 가르는 게 계산(算)이라는 점을 역설했다. 천리 밖의 전쟁터 승부를 가르는 게 바로 그 끊임없는 타산(打算), 나아가 모략이라는 점을 설명했다. 잘못 받아들이면 아주 냉혹하고 타산적인 사람이 승리할 수 있다는 말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손자병법의 탐독은 결국 지나치게 현실적인 인간 유형을 만들어 낼 위험이 없나.
“전쟁을 다루는 사람이 현실적이지 않으면 큰일 난다. 현실적인 여건을 최대한으로 고려해 그에 알맞은 전법을 생각해 내야 한다. 그렇지만 손자는 단순히 싸움에서 승리만을 갈구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진정한 승리에 대해 ‘공명(功名)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손자의 전쟁철학은 생존을 위한 처절한 경쟁이 불붙었던 중국 춘추시대에 탄생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공적과 명성을 위해 싸워서는 안 된다는 점을 말했다.”

-그 병법서의 핵심 개념 중에 또 소개하고 싶은 점이 있는가.
“손자는 ‘국방력이 국가의 가장 큰일(兵者, 國之大事)’이라고 병법서 모두에서 말하고 있다. 국방력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아울러 정보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했다. ‘상대를 알고, 내 처지를 정확하게 파악하라’는 뜻의 ‘지피지기(知彼知己)’는 그런 정보의 중요성을 말한 대목이다. 아울러 승리의 핵심은 세(勢)에 있다고 봤다. 승리를 만들어내는 조건과 환경의 의미다. 개인적인 책임보다는 그 세를 잘 활용해야 한다는 말도 자주 강조하고 있다. 그 밖에도 짧게 칠 때는 쳐버리라는 뜻의 ‘단(短)’이라는 개념도 중요하다. 어느 정도 조건이 성숙했을 때 질질 끌지 말고 빨리 공격하라는 ‘졸속(拙速)’이라는 단어도 손자병법에서 나왔다. 이순신 장군의 전법 중 상당수를 손자의 개념으로 확실하게 설명할 수 있고, 클라우제비츠와 리델 하트 등을 비롯해 그의 영향을 받은 서양의 최고 군사철학자들도 부지기수다. 그의 위대함을 설명할 수 있는 대목이다.”

-손자병법을 얼마나 읽었나.
“약 1만 번 정도 읽었을 것이다. 1975년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한 뒤 손에 처음 들었는데 강한 충격을 받았다. 간결한 표현 중에 아주 심오한 전쟁철학이 숨어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그 뒤로 수도 없이 많이 손자병법을 읽었다. 이와 별도로 동서고금의 많은 전쟁을 연구했다. 역시 손자는 그중의 으뜸이라고 보기에 전혀 손색이 없었다.”

-손자병법 연구자로서 자신의 장점을 꼽는다면.
“실제 전략을 다뤘다는 점이다. 육사 졸업 뒤 군문에 있으면서 진짜 전쟁의 전략을 다루는 부서에 있었다. 야전 경험과 함께 합동참모본부의 전략장교로 재직했던 경험, 그 기간에 4개월 동안 유럽의 각종 전쟁터를 돌면서 실제 벌어진 전쟁을 전략적 안목에서 다룰 수 있었다는 점, 이를 오래전부터 읽어온 손자병법과 결부시켜 사람 사이에 벌어진 그 수많은 전쟁을 정리할 수 있다는 점이 내가 지닌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여러 철학자 모두 ‘도(道)’를 말했다. 손자의 도는 무엇인가.
“역시 손자는 전쟁철학자였다. 공자의 도는 사람의 도리, 걸어야 할 길에 대해 여러 추상적 가치를 붙였다. 그러나 손자의 그것은 매우 현실적이다. ‘백성(국민)이 위(上·정부 또는 지휘자)와 뜻을 함께하는 것(令民與上同意也)’이라고 했다. 군주의 일방적 통제가 아닌, 백성의 수준에서 뜻의 합치를 이루는 상태를 가리키는 구절이다. 전쟁은 존망을 다투는 위기의 관문이다. 그를 이겨나가기 위해서는 국가와 사회의 뜻을 한데 모으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점을 2500년 전의 손자가 갈파하고 있으니, 그의 군사철학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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