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사막에 판교 두 배 면적의 신도시 세운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82호 22면

김승연 한화 회장(가운데)이 지난달 29일 이라크 비스마야의 신도시 건설 현장을 찾아 현지 직원들과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 한화]

신도시 건설이 한국의 새로운 수출산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상하수도와 전기·가스·통신 등 기반 시설에다 대규모 아파트를 조성해 도시 하나를 통째로 수출하는 일이라 부가가치도 크다. 부동산 포털 닥터아파트의 이영호 리서치연구소장은 “남한은 237개국 중 면적 기준으로 108번째의 작은 나라(9만8000㎢)이지만 세계 곳곳에 한국산(産) 신도시를 짓는 건설 강소국”이라고 말했다.

가장 비근한 예는 중동 사막에 판교 신도시(9.3㎢) 두 배 크기(18.3㎢)로 지어질 신도시다.<조감도> 한화건설이 이라크 수도 바그다그에서 동남쪽으로 10㎞ 떨어진 비스마야에 짓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향후 7년간 77억5000만 달러(약 8조7000억원)를 들여 허허벌판에 큰 도시를 조성하는 것이다. 북아프리카 알제리에서도 수도인 알제로부터 남쪽으로 250㎞ 떨어진 부그줄에 ‘코리아’ 브랜드를 단 신도시가 건립 중이다. 대우건설이 2025년 완공을 목표로 60㎢ 부지에 짓고 있다.

이라크는 신도시 수출 성패의 시금석
지난달 29일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현장. 김승연 한화 회장이 방탄 조끼에 작업복 차림으로 공사 캠프를 찾았다. 직원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고, 숙소를 돌아보며 불편한 점이 없는지 들었다. 이곳에 자신의 야전 숙소를 만들어 달라고도 했다. 김 회장은 “이라크 신도시 건설은 하늘이 준 절호의 기회이자 제2 중동 붐의 기반이 될 것”이라고 현장 직원들을 독려했다.

앞서 김 회장은 누리카밀 알말리키(Nouri Kamil Al-Maliki) 이라크 총리와 사미 알아라지(Sami R. Al-Araji) 국가투자위원장을 만나 신도시 공사 진행과 전후 복구 사업에 관해 논의했다. 알말리키 이라크 총리는 바그다드 총리 공관을 찾은 김 회장에게 “한화를 한국이 아니라 이라크 기업으로 생각하고 협력을 강화하고 싶다. 앞으로도 이라크를 자주 찾아 전후 복구사업에 관심을 가져 달라”고 당부했다. 김 회장도 “이라크 발전에 참여할 기회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 제2의 신도시는 물론 태양광 발전 사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하자”고 화답했다.

비스마야는 허허벌판 사막지대다. 한화는 이곳에 도로와 상하수 관로를 포함한 기반 시설에 10만 호의 국민주택까지 짓는다. 설계·조달·시공을 한 회사가 모두 진행하는 디자인 빌드(Design Build) 방식이고, 총 공사대금 77억5000만 달러 중 25%를 선수금으로 받는다. 김현중 한화건설 부회장은 “물가상승을 반영한 공사금액 증액(Escalation) 조항이 있어 실제 공사대금은 총 80억 달러에 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라크 정부가 예산 확보와 주택 분양을 책임지고 3개 국영은행이 지급보증을 선다. 한화건설은 공사 기간 단축을 위해 사전 제작된 콘크리트 구조물을 쌓는 PC공법으로 두 달마다 4000가구 단지를 하나씩 건설할 계획이다.

이번 이라크 신도시 프로젝트는 중소 협력업체와의 상생은 물론 청년 해외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공사가 본격화하면 이라크 현지에 국내 중소 협력업체와 1000여 명의 협력사 직원이 동반 진출한다. 이대우 한화건설 경영지원실장은 “국내 고교 졸업 예정자 중에서 건축·토목 분야 현장 시공 인력 100명 이상을 뽑겠다”고 말했다. 8월 한 달간 한화건설 홈페이지(www.hwenc.co.kr)에서 접수한다.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이 제대로 진척되면 이라크의 전후 복구 사업인 ‘100만 가구 국민주택 건설 프로젝트’의 추가 일감을 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분당 등 대형 신도시 경험이 무기
아프리카에서는 대우건설이 신도시 수출 첨병으로 나섰다. 이 회사는 알제리 정부가 추진하는 국토개발종합계획에 따라 부그줄에서 신도시를 건설 중이다. 부지 조성과 50㎞ 길이의 도로, 20㎞의 수도·전기·가스·통신 등의 기반 시설 공사가 진행 중이다. 2025년까지 주택 8만 가구 35만 명이 거주하는 대형 도시가 조성된다. 40억 달러 규모의 알제리 부이난의 신도시 건설사업도 추진 중이다. GS건설은 베트남 호찌민시 인근의 냐베 일대 349만㎡ 면적에 6만80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신도시를 건설 중이다. 1단계 공사가 끝나는 2014년부터 빌라·아파트·주상복합 가구가 차례로 들어선다.

해외 신도시 건설 역군으로 국내 신도시 개발의 산 역사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빼놓을 수 없다. LH가 자체적으로 신도시 건설을 추진하기보다 업계를 돕는 형식이다. 건설사들의 해외 진출과 경제협력 사업을 지원한다. LH 해외사업처의 류경수 차장은 “해외 신도시 건설에 관한 컨설팅 서비스를 비롯해 해외 건설업체·정부와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등 민간의 해외진출을 돕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LH는 올해 알제리의 하시메사우드 신도시에 대한 기본 계획 및 설계 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또 남수단이 추진하는 새 수도 건설에도 타당성 조사 및 지도제작 용역 회사로 참여한다. 이 밖에 지난해부터 베트남에서는 후에시 마스터플랜 개선사업 관리, 인도네시아에서는 섬유단지 도시의 기본 계획 수립 및 설계에 대한 컨설팅도 진행하고 있다.

‘한국산’ 신도시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뭘까. 국내 건설업계와 당국은 일찍이 1980년대 말 경기도 분당·일산 등 1기 신도시를 비롯해 단시일에 대단위 주거타운을 구축해 온 경험과 노하우를 갖고 있다. 닥터아파트의 이영호 리서치연구소장은 “해외에서 신도시 건설 입찰이 부쳐질 때마다 한국의 대단위 첨단 아파트 시공능력과 신도시 개발 경험에 높은 점수를 준다”고 말했다.

신도시 수출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기존에 추진되던 해외 신도시 건설사업 중 일부가 차질을 빚고 있다. 건설업체에 돈이 마르면서 해외에 나가 위험을 안고 도박을 벌일 여력이 줄었기 때문이다”고 지적했다. 어떤 나라는 국민 여론을 얻기 위해 신도시를 전시성 사업으로 추진하기도 해 정권이 바뀔 경우 사업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