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권근영의 그림 속 얼굴

원반 던지는 사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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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권근영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세 번째 올림픽을 여는 런던의 대표선수는 ‘원반 던지는 사람(Discobolus)’이 아닐까 싶다. 대영박물관(British Museum)은 올림픽을 맞아 이 조각을 입구에 전진 배치해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1948년 런던 올림픽 땐 포스터의 메인 이미지로도 등장했다. 2년 전 우리나라 전시에도 왔으니 제법 바쁜 선수다.

 젊은 경기자가 묵직한 원반을 막 던지려는 순간을 묘사한 이 작품은 미술사 최초의 ‘S라인’(?)일 거다. 더 힘줘 던지려고 몸을 굽히고 팔을 한껏 뒤로 젖혔다. 원반은 바로 다음 순간이면 날아갔을 텐데, 청년은 이렇게 온 힘을 응축한 준비 자세로 2500년 가까이 굳어 있다. 아테네의 조각가 미론(Myron)이 기원전 450년께에 만든 걸작이다. 원작은 없고, 로마시대의 복제품 여럿이 남아 고대 그리스인들이 운동감의 표현을 어떻게 정복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기원전의 그리스인들은 차려 자세를 한 소년·소녀상부터 창을 든 사람에 이어, 몸을 대(大)자로 하고 창을 던지는 사람과 이 청년을 만들었다.

자세가 꽤 그럴싸하지만 실제와는 다르다. 허리를 너무 굽혔고, 회전의 균형추가 되어야 할 왼팔은 너무 내렸다. 이 자세대로라면 원반 대신 몸을 앞으로 날리게 될 형편이다. 그러니까 미론은 운동 경기의 한 순간을 묘사하려던 게 아니다. 신체 각 부분의 가장 이상적인 자세를 당시의 인기 스포츠 원반던지기를 통해 조합했다. 몸통은 앞모습, 다리와 팔은 옆모습 등으로 말이다. 이렇게 해서 ‘원반 던지는 사람’은 움직이는 신체 표현법에 대한 도전과 성공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까지 스포츠의 상징이 된 이유다.

 발 달린 모든 동물은 달린다. 날개 있는 동물은 하늘을 날고, 날개 없는 동물도 비상을 꿈꾼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더 높이, 더 멀리 뛰어야 살 수 있었다. 먹잇감을 쫓기 위해 달리고, 개울을 훌쩍 뛰어넘고(멀리뛰기·장대높이뛰기), 돌(포환·원반)을 던지거나 창이나 화살(양궁·사격)을 날려야 했다.

 이제 인간은 한계 극복을 위해 달린다. 신기록에의 도전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인체의 능력을 최고조로 끌어올리기 위해 발달된 젊은 그들의 몸과 기술, 그리고 승리를 지켜본다. 수천 분의 1초 단위로 기록하는 첨단 장비가 이들을 뒤쫓는다. 그래서 미세한 차이로 승부가 갈리는 광경은 물론, 눈과 기계의 시비도 잦다. 박태환 선수의 부정출발 실격과 판정 번복, 그리고 메달 획득까지의 드라마도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