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수 찾는 세계 닷컴들[2]

중앙일보

입력

지난해 9월 미국 실리콘밸리에 진출한 A사의 B사장은 요즘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간다. 국내 창투사로부터 액면가의 수십배로 투자를 받은 뒤 미국에 진출했지만, 5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현지 매출이 거의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작성된 사업계획서의 내용은 ''매출목표 2000년 3백만~4백만달러, 2001년 2천만~3천만달러'' . B사장은 "지난해에 세운 사업계획이 너무 낙관적이었다" 며 "요즘 추가 펀딩(투자유치) 을 받기 위해 정신없이 뛰어다니지만 매우 어렵다" 고 털어놓았다.

지난달 실리콘밸리에서는 국내 10개 벤처기업의 합동 투자유치 설명회가 열렸다. 그러나 행사에 오겠다던 미국의 12개 벤처캐피털 가운데 막상 참석한 곳은 2개 회사에 불과했다. 3박4일로 예정됐던 행사는 결국 2~3시간의 설명회로 끝났고, 나머지는 관광이나 여가 시간으로 채워졌다.

한국의 닷컴기업들이 방황하고 있다.

확실한 수익모델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는가 하면, 충분한 사전조사 없이 설익은 사업모델로 해외에 진출했다 투자자들로부터 퇴짜맞기 일쑤다.

실리콘밸리의 한 벤처기업 사장은 "한국의 벤처기업이 기술력만 믿고 무리하게 진출하는 경우가 많다" 면서 "미국에서 성공한 한국계 벤처기업은 대부분 1.5세나 2세 교포 회사이며 한국에서 직접 진출한 업체가 드문 것도 이 때문" 이라고 말했다.

지난 2일 라스베이거스에서 골드먼삭스 주최로 열린 ''인터넷 뉴미디어와 e-커머스'' 콘퍼런스는 미국 투자자들의 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자리였다.

이날 오후 한국.중국.인도의 대표적인 닷컴 3개사 최고경영자(CEO) 가 나와 아시아 인터넷 시장에 대해 토의를 벌였지만, 행사에 참석한 투자자는 20명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옆방에서 열린 ''익스페디아(미국 2위의 온라인여행업체) '' 의 회사 설명회에는 70~80명이 몰려 대조를 이뤘다.

난맥상을 보이는 것은 국내 활동도 마찬가지다. 경기둔화 등으로 온라인 광고가 어려워지자 대부분의 닷컴 기업이 ''돈이 된다'' 는 사업에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중앙일보가 닷컴기업 CEO 3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3%가 올해 새롭게 진출할 사업으로 ''솔루션 판매'' 를 꼽았으며 ''응용서비스공급(ASP) '' 이 21%로 뒤를 이었다.

반면 어려운 경영여건(77%) 에도 불구하고 특정 사업에서 철수하거나 직원을 줄이는 등 구조조정을 했다고 응답한 업체는 26%에 불과했다.

선택과 집중을 통한 특화전략으로 정면으로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외국의 닷컴과 달리 한국은 아직도 몇몇의 ''돈이 되는'' 사업으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실리콘밸리에서 비즈니스컨설팅을 하는 DSI의 이영상 사장은 "아직 확실한 수익모델을 찾지 못해 기업들이 자체 기술력에 대한 확실한 인식없이 이 사업 저 사업에 기웃거리고 있는 것 같다" 고 말했다.

인터넷카드업체인 레떼의 김경익 사장은 "우리나라 닷컴의 현실이 미국보다 좋을 수 없는데도 많은 기업이 ''쉬쉬'' 하며 ''우리 회사는 좋다'' ''구조조정도 없다'' 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면서 "과감한 변신을 통해 어려움을 이겨나가야 할 때" 라고 말했다.

김한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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