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김운용 위원의 '외로운 도전'

중앙일보

입력

미국에서 벌어진 마스터스 골프대회에서 타이거 우즈라는 미국 선수가 우승했다.

한국 선수가 참가하지도 않았건만 많은 한국 사람들이 새벽에 일어나 TV를 시청했고, 한국 언론들은 우즈의 우승을 대문짝만하게 보도했다.

너무 과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가능하다. 그러나 메이저대회 4연속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세계 최고의 골퍼' 에 대한 '예우' 라고 이해할 수 있다.

우즈에 대해 그토록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우선은 신기에 가까운 그의 실력이다. 드라이브샷, 아이언샷, 칩샷, 퍼팅 등 도무지 못하는 게 없다. 거기에다 어린 나이답지 않은 침착함도 겸비하고 있다. 세계 최고라는 찬사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우즈의 위대함이 더 돋보이는 것은 유색인인 그가 백인들의 전유물이었던 골프에서 정상에 올랐다는 사실이다. 마스터스 대회가 벌어지는 오거스타 골프클럽은 유색인종에게 폐쇄적인 곳으로도 유명하다.

철저히 회원제로 운영되는 그곳은 아직도 흑인 회원이 단 한명에 불과하다. 우즈의 우승은 묘한 쾌감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박세리와 박찬호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한국의 어린 여자선수가 과감하게 미국에 진출해 곧바로 정상에 오른 것은 온 나라의 경사가 아닐 수 없다. 우리에게는 높아만 보였던 세계의 벽을 뛰어넘은 박세리를 보면서 모든 국민이 한마음으로 환호한 것이다.

박찬호는 아직 세계 최고라는 찬사를 받기에 부족하다. 그러나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던 메이저리그에 뛰어들어 세계 최고의 선수들을 상대로 당당하게 삼진 아웃을 잡아내는 모습을 보는 것은 아침 잠을 반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어떤 분야이건 세계 최고가 된다는 것은 박수갈채를 받기에 충분한 이유다. 더구나 온갖 역경을 뛰어넘어 정상에 올랐다면 그 가치는 두배, 세배가 될 수 있다.

지금 한국은 또 한 명의 '세계 최고' 를 기다리고 있다. 세계 스포츠를 이끄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위원장이다. 오는 7월 16일이면 판가름날 위원장 선거에 한국의 김운용 대한체육회장 겸 IOC 집행위원이 뛰어들었다.

솔직히 한국인이 IOC 위원장에 도전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흥분하기에 충분하다.

IOC 위원장이 어떤 자리인가. 근대 올림픽 창시자인 쿠베르탱을 비롯해 브런디지, 사마란치 현 위원장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넘보기에는 너무 먼 자리였다. 지금까지 7명의 IOC 위원장은 모두 유럽인 아니면 미국인이었다.

그런데 한국인이, 아시아인이, 아니 유색인이 처음으로 그 자리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것 자체로도 대단하다. 더구나 외신에서도 2파전이니 3파전이니 하면서 당선 가능성을 보도하고 있으니 흥분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지난 3일 모나코 몬테카를로에서 차기 위원장 출마를 선언하는 金회장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당선이 가능하다는, 무언의 시위로 보였다.

고군분투(孤軍奮鬪).

IOC 위원장에 도전하기까지 金회장은 혼자 뛰었다. 金회장에 대한 평가는 해외에서보다 국내에서 더 인색하다. 金회장이 IOC위원장에 도전한다고 했을 때 국내의 반응은 대부분 냉소적인 것이었다.

지금까지는 혼자 뛰었다 하더라도 이제부터는 함께 뛰어야 한다. 가능성이 있다면 확실히 밀어줘야 한다. IOC위원장은 올림픽이나 월드컵 개최보다 한차원 높은 단계다. 개인의 영광이 아니라 한국의 자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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