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올림픽은 ‘안 돼 올림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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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버스 팔굽혀펴기 … ‘힘들다’ 신음도 22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의 체코 올림픽 대표팀 본부 앞에 설치된 ‘팔굽혀펴기 런던버스’(왼쪽 사진). 런던 올림픽의 구경거리로 떠오르고 있는 이 작품은 체코 예술가 다비드 체르니가 런던의 명물인 2층 버스를 개조해 만들었다. 지난 2일 체코 프라하의 공장에서 엔진으로 작동하는 로봇 팔을 이용해 팔굽혀펴기를 시연하고 있다(오른쪽). 이 버스는 팔굽혀펴기를 할 때 힘들다며 신음소리를 내는가 하면 창문을 통해 영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런던·프라하 로이터=뉴시스]

올림픽 당구장, 금메달 호프집, 88 다방…. 1988년 한국에선 이런 종류의 올림픽 상호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상당수는 유산처럼 지금도 남아 있다. 그런데 요즘 런던에선 이런 풍경을 볼 수 없다. 일반 거리에선 다섯 개의 원으로 그려진 올림픽 마크조차 찾기 힘들다. 올림픽을 며칠 앞둔 도시인지 의문이 갈 정도다. 그나마 다른 분위기라면 영국 국기인 ‘유니언기’가 넘쳐난다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엄격한 후원 기업 보호책 때문이다.

런던 동남부인 서더크 지역의 한 카페에 대형 베이글로 만든 올림픽 마크가 걸렸다. 그러나 올림픽 로고 독점 사용권한 위반이라는 단속요원의 지적에 따라 곧 이를 떼어냈다. [데일리메일 웹사이트]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지난 19일 런던 동부 지역의 한 카페가 대형 베이글로 올림픽 마크를 만들어 창에 내걸었다. 이틀 뒤 성화 릴레이가 가게 앞을 통과하는 것을 기념하기 위한 용도였다. 몇 시간 뒤 관할 구청의 도로 정비 단속원이 이를 떼어내라고 권유했다. 어기면 법원에 불려가게 된다는 경고도 받았다. 주인은 이를 걷어냈다.

 영국 남부 해안도시인 와이머스의 한 정육점 주인은 소시지를 연결해 만든 올림픽 마크를 진열창에 걸었다가 비슷한 일을 겪었다. 주인은 소시지로 만든 다섯 개의 원을 다섯 개의 네모 모양으로 바꿨다. 항의의 표시였다.

 소상인뿐만 아니라 왕실 사돈도 비슷한 일로 망신을 샀다. 윌리엄 왕자와 지난해 결혼해 케임브리지 공작 부인이 된 케이트 미들턴의 부친은 ‘파티 피시스’라는 이벤트 용품 판매 업체를 경영하고 있다. 이 회사에선 최근 올림픽 마크 모양의 여러 용품을 만들어 인터넷을 통해 선전하다 IOC의 단속반에 경고를 받았다.

 훌라후프로 올림픽 마크를 만든 속옷가게, ‘GB 2012’라는 문구를 새긴 셔츠를 판매한 의류점 등 단속 대상이 된 곳들은 부지기수다. 올림픽 주경기장 인근의 한 카페는 ‘Olympic’이라는 글자를 간판에 넣었다가 문제가 되자 맨 앞 ‘O’자만 지우고 ‘lympic’을 남겨놓았다.

 ‘올림픽’ ‘London 2012’와 같은 직접적인 연관 단어만 못 쓰는 게 아니다. ‘금메달’ ‘게임’ 등의 표현도 상업적 용도로 사용할 수 없다. IOC는 약 300명의 단속요원을 동원해 이를 감시하고 있다. 영국 언론은 이들을 ‘브랜드 경찰관’이라고 부른다.

 서배스천 코 런던올림픽조직위원회(LOCOG) 위원장은 “경기장에 나이키 운동화는 신고 갈 수 있지만 펩시콜라 로고가 그려진 셔츠를 입어선 안 된다”고 말해 “입는 것까지 간섭하느냐”는 비난을 샀다. 나이키와 펩시콜라의 경쟁사인 아디다스와 코카콜라는 11개 공식 후원사에 포함돼 있다. 후원사가 낸 돈은 총 14억 파운드(약 2조5000억원)로 전체 런던 올림픽 예산의 12.2%를 차지한다.

 엄격한 감시가 올림픽 분위기를 해친다는 여론이 들끓자 보리스 존슨 런던시장도 “정신 나간 짓”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상인들을 거들었다. 그는 “단속이 합리적 수준을 넘어섰다”고 말했다. IOC에서 마케팅 담당 일을 했던 마이클 페인은 영국 신문 인디펜던트에 “이번처럼 강력하게 규제를 한 적은 없었다. 열기를 식히는 IOC의 자해행위”라고 비판했다.

 IOC와 LOCOG는 “올림픽 개최 비용을 내는 후원 기업의 독점적 지위에 대한 보호는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단체복만 아니라면 펩시콜라 셔츠를 입어도 된다”고 한발 물러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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