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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미사일 사거리 협상 서둘러 타결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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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지난해부터 이어져 온 한·미 미사일 사거리 연장 협상이 미국의 반대로 진척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 보유 미사일의 사거리와 탄두 중량 등을 제한하는 한·미 미사일 지침을 폐기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등 비판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일부에선 미국이 우리의 주권을 지나치게 제한한다며 노골적인 반감마저 드러내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한·미 간 미사일 협상이 조기에 적절한 수준에서 타결되지 않으면 한·미 동맹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가 미국에 미사일 사거리 연장을 요구하는 이유는 북한에 비해 지나치게 열세인 탄도미사일 전력을 대등한 수준까지 확장하기 위한 것이다. 북한은 1970년대부터 미사일 개발에 몰두한 끝에 이미 1987년에 사거리 300㎞, 탄두 중량 1t의 스커드-B를 양산하기 시작했고 1990년대부터는 사거리 500㎞, 탄두 중량 770㎏인 스커드-C를 양산하고 있다. 이어 사거리 1300㎞인 노동1호, 1000㎞인 노동2호도 실전 배치했으며, 최근에는 대륙간탄도탄(ICBM) 수준의 사거리를 가진 대포동 미사일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북한이 보유한 미사일은 남한을 사거리로 하는 스커드 미사일만 1000여 기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은 1979년 사거리 180㎞의 ‘백곰’을 처음 개발한 이래 2001년에야 사거리 300㎞, 탄두 중량 500㎏의 현무-2 미사일을 실전 배치할 수 있었다. 기술력은 충분하지만 한·미 미사일 지침에 의해 제한됐기 때문이다. 이런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순항미사일인 사거리 500~1500㎞의 현무-3 A, B, C를 개발했다. 그러나 순항미사일은 탄도미사일에 비해 위력이 크게 떨어지는 문제를 안고 있다.

 미국이 한국의 미사일 성능을 제한하는 것은 전략무기인 미사일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것을 막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이를 위해 미국은 선진국들과 함께 사거리 300㎞, 탄두 중량 500㎏을 넘는 미사일의 해외 수출을 금지하는 미사일기술수출통제체제(MTCR)를 운영하는 한편 한국·브라질·남아프리카공화국 등과 양자협정을 체결해 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막고 있다. 따라서 한국에만 사거리 연장을 허용하면 이 체제를 유지하기 어렵게 된다며 반대해 왔다. 또 한·미 동맹에 의해 미국이 북한의 전략무기 도발을 충분히 억제할 수 있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핵무기 개발을 완성한 것으로 판단되는 북한이 핵도발 조짐을 보일 때 미국이 선제적으로 북한을 공격할 것인지에 대해 국내에서 의구심이 적지 않다. 중국·러시아와의 분쟁 가능성을 우려해 신중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전시작전통제권을 한국군이 주한미군으로부터 넘겨받는 2015년 이후에는 특히 그런 우려가 커질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나아가 한국을 둘러싼 중국이나 러시아, 북한은 물론 일본까지도 막강한 미사일 능력을 보유한 데 비해 한국만 뒤처져 있어야 한다는 점도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일부에선 최근 이 같은 문제들을 제기하며 2020년께엔 한·미 미사일 지침의 효력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한국이 무제한의 미사일 개발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에 대해 많은 전문가는 적절한 수준의 사거리 연장 필요성을 인정하지만 미사일 능력을 무제한으로 확장하는 것은 불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자칫 우리 안보의 큰 몫을 차지하는 한·미 동맹체제를 약화시킬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다. 일리가 있는 지적이다.

 한·미 양국 정부는 미사일 협상 지연으로 비판여론이 악화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이와 관련해 본지는 지난달 5일 사설을 통해 사거리가 최소한 800㎞는 돼야 한다는 주장을 폈었다. 미국이 거론하는 550㎞로는 북한을 충분히 견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이 사거리와 탄두 중량을 무제한으로 확장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중국이나 일본을 견제할 수 있어야 한다지만 비용과 안보환경 등을 고려할 때 이들과의 분쟁을 전제로 안보전략을 세울 필요성은 크지 않기 때문이다. 한·미는 동맹의 효율성을 강화하는 한편 북한의 안보 위협에 대해 충분히 대비하는 수준에서 협상을 하루빨리 매듭지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