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 마이너’ 메이저 등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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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사들이 웃고 있다. 불황 속 호황이라 표정관리가 필요할 정도다. 이헌출 LG캐피탈 사장은 특히 그렇다. 만년 ‘마이너’가 3년 만에 ‘메이저’로 등극했기 때문이다. 정상 도전의 힘은 과감한 결단과 이를 밀고 나가는 뚝심이란 평가다. 그룹 회장실에서 오너들을 지켜보며 간접 경영수업을 쌓은 게 큰 도움이 됐다. 이헌출 사장의 정상 정복기와 카드사들의 근황을 살펴봤다. <편집자>

지난 1월18일 서울 LG강남타워 23층. 구본무 LG그룹 회장과 정영의 LG투자증권 회장, 황성진 美 워버그증권 이사 등 LG캐피탈의 이사진이 마주 앉았다. 지난해 경영실적을 점검하는 자리다.

“고생했습니다.”

구본무 회장이 이헌출(李憲出·54) LG캐피탈 사장에게 인사를 건냈다. 긴장한 듯 조금 굳어 있던 이헌출 사장의 얼굴이 그제서야 밝아졌다. 어느 해보다 괜찮은 ‘성적’을 올렸지만 아무래도 어려운 자리기 때문이다.

이사진의 까다로운 ‘심사’를 무사히 통과한 덕분일까. 이헌출 사장은 지난 3월5일 열린 주주총회에서는 좀더 자신 있는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LG캐피탈은 지난해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당기순익만 3천9백49억원. 카드 회원 수도 무려 1천2백만 명을 넘겼다. 특히 시장점유율 20%로 카드업계에서 단일 법인 기준 1위에 올랐다.

3년 만에 이룬 쾌거다. 이젠 1등을 지켜야 한다는 심리적 부담이 생겼다. 그래도 요즘은 어느 때보다 힘이 난다. 1997년 12월1일 나온 그룹 인사를 보고 아찔했던 기억도 이젠 까마득한 추억이 됐다.

여느 때보다 한 달 빨리 나온 당시 인사내용은 LG캐피탈 사장자리.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로 들어가면서 나라경제가 기로에 서 있던 시절이었다. 더군다나 콜금리가 35%를 넘나들었다. 그런 때 신용카드사 사장을 맡으라니 눈앞이 캄캄했다. 누가 맡아도 장사가 제대로 될 상황이 아니었다. 자리를 물려준 최진영 前 사장도 축하는커녕 “참 안됐네”라며 혀를 찼다.

“승진인지 아닌지 말 그대로 난감하더군요.” 지금이야 덤덤하게 말하지만 그 때는 죽을 맛이었다. 카드를 쓰기만 했었지 정작 본인이 카드회사 경영을 맡게 될 줄은 몰랐다. 답답했다. 뭐부터 해야 하나. 그렇다고 가만히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준비된 장수는 힘든 전쟁도 승리로 이끌기 마련. 그는 1997년 1월 그룹 회장실 부사장에서 LG캐피탈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 나름대로 준비를 해왔다.

회사 안팎을 훑어본 그는 뭔가 큰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패배주의에 젖은 조직문화가 한눈에 들어왔다. 성적은 바닥권인데도 직원들은 대수롭지 않다는 분위기였다. 전쟁에서 매번 지면서도 병사들은 무사안일이었다.

그는 먼저 외국 경쟁사부터 살펴봤다. 당장 회사가 신통찮은데 무슨 엉뚱한 일인가라는 회사 분위기가 역력했다. 그렇지만 그는 잘 나가는 카드사들의 노하우를 배우는 일이 더 급하다고 여겼다. 다시 한 번 ‘원론’부터 밟아간다는 전략이었다. 이듬해 4월까지 미국·일본·유럽을 돌아다녔다. 벤치마킹 결과는 간단했다. 탄탄한 고객기반과 경쟁력 있는 상품.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명제였다. 문제는 어떻게 하느냐였다. 그는 사장에 오른 뒤 먼저 조직문화를 바꿨다. 새 상품을 만들고 고객을 모으려면 무엇보다도 탄탄한 조직이 필요했다.

명장(名將) 밑에 약졸(弱卒)은 없는 법-. 그가 꺼낸 비책은 ‘톱(Top) 2000’ 운동. 2000년까지 수익성과 고객 만족도에서 1위에 오르자는 청사진이었다. 자신감을 불어넣는 게 급했다.

LG캐피탈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고 이를 어떻게 극복할지 머리를 맞대 고민하자는 내용도 담았다. 젊은 직원 중심으로 변화를 주도하도록 분위기도 다잡았다. 과장급 이하 젊은 사원들을 중심으로 소위원회를 만들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줘서 정기적으로 평가했다. 물론 포상도 빠트리지 않았다. 6개월 동안 새로운 영업은 일체 중단했다. 대신 여신 회수에 매달렸다. 금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떨어질 걸로 내다봤다. 다만 그 때 치고 나갈 힘이 필요했다. 그래서 부실채권을 줄이는데 애를 썼다.

신용카드의 개념을 바꾸는 모험도 단행했다. 계층과 연령, 지역별로 상품을 특화했다. ‘모든 신용카드는 똑같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려야 승산이 있다는 계산이었다. 돈깨나 있는 사람이 카드를 쓴다는 생각에서도 벗어났다. 특히 소비욕구는 넘치지만 돈이 부족하기 마련인 젊은 중산층을 노렸다.

예상은 적중했다. 1999년 8월 선보인 ‘LG레이디카드’는 여성들로부터 인기를 얻었다. 한 달 뒤 2,30대 남성을 타깃으로 내놓은 ‘LG2030카드’도 선전을 했다.

신용카드 시장에서 LG캐피탈의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LG캐피탈은 두 카드로 1년 6개월 만에 5백만 명의 회원을 새로 모았다. 그가 사장에 오를 당시 5백만 명에 불과했던 회원 수는 지난해 말 현재 1천2백만 명으로 두 배 넘게 늘었다. 지난해 9월에는 제휴사인 비자(VISA) 인터내셔널이 ‘Award for global excellence’라는 상패를 만들어 줬다. 또 박철순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수업시간에 LG캐피탈의 성공기를 경영 사례로 소개하기도 했다. 만년 꼴찌던 LG캐피탈이 정상에 오른 것은 이헌출 사장의 ‘뚝심’ 덕이라는 평가다. 불황이 한창이던 98년에 투자를 늘리기란 쉽지 않았다.

“경영자는 이익을 가지고 얘기하는 것 아닙니까. 너도나도 움츠리는 마당에 소신껏 밀고나가는 게 쉽지는 않더군요.”

구본무 회장도 힘을 실어줬다. 구본무 회장은 “당장 좋은 사장이 되려고 하지 말고 세월이 지나고 나서 좋은 사장이었다는 평가를 받도록 하라”고 말했다. 그만큼 신임을 받았다는 얘기다.

그는 지난 97년 1월 LG캐피탈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길 때까지 LG그룹 회장실에서 재무쪽 참모로 일했다. 20여 년 가까이 그룹 경영진을 보좌했다. 그런 배경 때문일까. 그는 선이 굵은 경영자로 컸다. 멀리 보고 결정은 빨리 내린다. 더군다나 그는 재무·금융통으로 숫자에 밝다. 숫자만 보고도 문제점과 대책을 제시할 정도다. 주판알이나 튕기는 게 아니다.

오랜 참모생활 탓에 쉽게 결단을 못 내리지 않느냐고도 한다. 그렇지만 그는 구자경 명예회장과 구본무 회장이 일을 어떻게 풀어가고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 지켜봤다. 말하자면 간접 경영수업이다. 그의 말처럼 돈 주고도 못 사는 ‘행운’이었다.

기업 인수·합병에 관여하면서 스케일도 키웠다. 지난 87년 LG캐피탈의 모태인 코리언익스프레스를 인수할 때 그랬다.

프리미엄은 얼마든지 얹어주겠다고 말했다. 3억원에 사업권을 넘겨 받은 그는 15년이 지난 지금 자신이 인수한 카드사의 사장이 됐다. MBC 청룡(現 LG 트윈스)을 손에 넣을 때는 아이디어도 반짝였다. 당시 출자제한 탓에 주식을 매입해 기업을 사들이기는 어려울 때였다. 그렇지만 그는 지금은 흔한 ‘사업양수도’라는 묘안을 짜내 꼬인 매듭을 풀었다. 이런 경험을 두루 쌓은 이헌출 사장은 LG캐피탈의 지휘봉을 잡은 지 3년 만에 ‘만년 꼴찌’를 보란 듯이 정상의 자리에 올려놨다.

LG캐피탈을 LG그룹의 ‘효자’로 키웠다. 다만 그러고도 요즘 고리대금업자로 몰리는 게 못마땅하다.

“카드업을 잘 모르고 하는 얘기지요. 예컨대 현금 서비스를 봅시다. 은행에 가서 10만원을 한달만 빌려달라고 하면 줍니까? 카드사와 은행은 금액·빈도·기간·신용 등이 다릅니다. 카드업계 금리는 수수료 개념에서 봐야지요.”

여유가 있다면 상황에 따라 금리를 내릴 수 있겠지만 카드업이 그리 간단한 비즈니스가 아니란 주장이다.

이헌출 사장은 ‘톱 2000’에 이어 ‘톱 2005’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를 위해 개인 소비금융사업에 승부를 걸었다. 신용판매와 현금서비스에 더불어 할부금융과 소비자금융, 카드론 등을 균형 있게 키워 종합금융회사로 자리매김한다는 전략이다. 지난 3월1일엔 조직을 개편하고 모든 업무의 ‘e-비즈니스화’도 선언했다. 그가 과연 2005년에도 1위를 지키는 수성(守城)의 명장(名將)이 될지 관심사다. 정상을 지키는 일은 정상에 오르는 것보다 몇 배 힘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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