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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해튼 월세대란과 뉴욕시 ‘반값 아파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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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경민
뉴욕특파원

2009년 맨해튼 소호의 원룸에서 월세로 신접살림을 차렸던 킴벌리 크루즈버거(32) 부부. 얼마 전 집주인으로부터 월세를 3795달러(436만원)로 345달러나 올려달라는 통보를 받고 열을 받았다. 지난해 한번에 650달러나 올려놓고는 또! 부아가 치민 부부는 집을 보러 나갔다가 반나절 만에 조용히 돌아왔다. 아기가 태어날 걸 대비해 방 두 개짜리를 알아봤더니 6000달러 밑으론 명함도 못 내밀 판이었다.

 요즘 맨해튼에선 곳곳에서 곡소리가 들린다. 달랑 방 두 개짜리 아파트 월세 평균이 3865달러다. 5년 연속 뛰어 이젠 매달 사상 최고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월세가 오르니 집을 줄여가려는 사람도 덩달아 늘어 원룸이나 투룸은 ‘천연기념물’이다. 가뜩이나 살림도 쪼들리는 마당에 월세마저 천정부지(天井不知)로 뛰니 서민만 죽을 맛이다. 서울엔 ‘전세대란(傳貰大亂)’이라지만 뉴욕 ‘월세대란(月貰大亂)’은 가위 살인적이다.

 뉴욕의 월세 폭등 뒤엔 수요 예측 실패란 인재(人災)가 숨어 있다. 2007년까지만 해도 월가는 잘나갔다. ‘보너스 폭탄’을 맞은 월가의 젊은 펀드매니저나 변호사는 호화판 콘도만 찾았다. 시정부도 원룸이나 소형 아파트는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러다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지자 하루아침에 역전했다. 호화판 콘도는 텅텅 빈 반면 소형 아파트는 품귀가 됐다. 마침 뉴욕으로 몰려온 벤처기업도 스튜디오와 원룸 수요를 폭발시켰다.

 현재 뉴욕시의 1~2인 가구는 180만 가구로 추산된다. 그런데 이들을 수용할 스튜디오나 원룸은 100만 개 안팎이다. 찾는 사람은 줄을 섰는데 물건은 없으니 값이 뛰는 건 당연하다. 뒤늦게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이 ‘반값 아파트’ 아이디어를 내놨다. 300평방피트(약28㎡)짜리 원룸형 스튜디오 설계 공모전을 연 것이다. 채택된 설계를 바탕으로 내년 말까지 16만5000개 스튜디오를 공급하겠다는 게 블룸버그의 구상이다.

 블록 찍듯 똑같이 찍어낸 한국의 ‘보금자리주택’과 달리 톡톡 튀는 디자이너 작품으로 승부를 건 것은 뉴욕다운 발상이다. 그렇지만 이미 확 붙어버린 월세대란 불을 이 정도 소화기로 잡을 수 있을지는 ‘글쎄’다. 어쩌면 보금자리주택처럼 그나마 움트려고 하는 주택 구입 수요의 싹마저 ‘블룸버그표 반값 아파트’가 싹둑 잘라버리는 건 아닐지 걱정스럽다.

 뉴욕 월세대란은 우리에게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을 만하다. 올해부터 한국도 1인 가구 비중이 가장 높아지고 2030년이 되면 1인 가구가 전체의 34%를 차지하게 될 거란 통계도 나왔다. 특히 고령 1~2인 가구가 빠른 속도로 늘게 돼 있다. 서울에도 이미 대학가 주변엔 원룸형 다세대 주택이 대세지만 그 정도론 어림없다. 소 잃고 헛고생하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서둘러 외양간 손질에 나서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