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자본잠식 방치땐 시장 충격

중앙일보

입력

28일 긴급 경제장관 회의에 이어 채권단이 29일 중 채권단협의회를 열어 현대건설 처리 방향을 결정하기로 한 것은 더 이상 현대건설 문제를 미루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정부와 채권단은 지난해 3조원 가까운 적자를 내며 완전 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현대건설을 더 방치할 경우 현대 계열사는 물론 시장 전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와 채권단은 일단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출자전환을 통해 기업을 살린다는 입장을 정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수순을 밟을지와 주식 감자 비율.경영진 선임 문제 등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 현대건설 자금 상황〓지난해 말 기준 현대건설의 차입금은 4조5천억원. 현대건설은 올해 자구계획 이행으로 7천5백억원, 영업이익으로 2천억원을 갚아 차입금을 3조5천억원 수준으로 줄인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그러나 외환은행은
▶올 1~2월 자구실적이 5백17억원에 불과하고
▶1분기 중 공사가 많지 않아 영업이 적자를 냈다며 회의적인 반응이다.

정부와 채권단은 지난해 현대건설의 여신에 대한 만기를 연장하면서 신규 지원이 없다고 했지만 올 들어 3천4백억원의 분양대금 담보 대출에 이어 4억달러의 해외공사에 대한 지급보증을 했다.

현대건설은 이달 말 1천억원대의 진성어음을 결제해야 하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 출자전환이냐 선(先)법정관리 후 출자전환이냐〓정부와 채권단은 출자전환을 할 경우 은행권 대출금인 1조4천억원, 은행 보유 회사채까지 포함하면 최대 2조원의 빚을 주식으로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출자전환을 하면 은행들이 현대건설에 신규 자금을 계속 지원해야 하는 것은 물론 현대건설이 해외에서 진 빚도 모두 갚아야 하는 등 추가 부담이 커진다. 또 정확한 해외공사 상황이 이번 정기 회계감사에서도 드러나지 않은 마당에 무턱대고 출자전환을 했다가는 은행권이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 때문에 일부 은행권에선 일단 부도 후 법정관리에 넣어 모든 채권.채무를 동결한 뒤 출자전환을 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 경우 현대건설의 국내외 신인도가 하락해 정상적인 영업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정부와 채권단이 28일 오전 4시간이 넘는 회의를 하고도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 불거지는 책임론〓현대 문제가 터진 지 1년이 넘었는데도 분명한 해결책 없이 사태가 악화된 점에 대해 정부와 채권단, 정몽헌 회장 등 오너 일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외환은행은 지난해 말 6천억원의 출자전환이면 가능하다는 보고서를 정부에 냈지만, 완전 자본잠식이 드러난 현 상황에선 1조4천억원을 출자전환해도 회생시킬 수 있을지 불투명해졌다. 鄭회장 일가와 현대건설도 지난해 1조2천억원의 자구를 실현했지만 시기를 놓쳐 효과가 반감됐다.

따라서 채권단이 출자전환을 할 경우 문책 차원에서 대주주 지분의 완전 감자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소액투자자들은 1999년 말 기준 2조원이 넘는 자기자본이 있었던 기업이 1년도 안돼 자기자본을 전액 잠식한 것은 분식회계가 있었는데 삼일회계법인이 회계감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라며 이의를 제기했다.

김원배 기자 oneb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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