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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식한 이한구, '정치 9단' 박지원에 말렸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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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가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고위정책회의가 끝난 뒤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뉴시스]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가 ‘노련한’ 민주통합당 박지원 원내대표에게 말린 걸까, 형세 판단이 안이했던 걸까. 정두언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 사태와 관련해 12일 국회 주변에서 오간 얘기다. 이 원내대표는 11일 개표 결과가 발표될 때까지도 정 의원 체포동의안이 부결되리란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한 의원은 “투표 도중 이 원내대표와 마주쳤는데 농담조로 ‘(통과) 안 되면 (원내대표) 그만두지 뭐’라고 하더라. 별 걱정이 없어 보였다”고 전했다.

 새누리당은 체포동의안 표결을 앞두고 의총까지 열었지만 표 단속은 없었다. 영남권의 한 초선 의원은 12일 “의총 때까지 아무런 연락이 온 게 없어 다른 의원들에게 ‘어떻게 하라는 거냐’고 물었지만 아는 의원이 없더라”며 “의총 때도 죄다 (체포동의안에) 반대 의견뿐이라 원내 지도부가 진짜 체포동의안을 통과시킬 생각은 있는 건지 헷갈렸다”고 말했다. 박근혜계 핵심인 윤상현 의원까지 체포동의안 반대 토론에 나서자 상당수 의원은 “계파 화합 차원에서 정 의원을 살려 주자는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의 메시지 아니냐”고 착각했다는 말까지 있다.

이한구

 반면 박 원내대표는 체포동의안 표결을 앞두고 의총조차 열지 않았다. 박기춘 원내수석부대표는 “바깥에서 (뭔가 숨은 전략을 전파하는 자리로) 오해할 수 있어 의총을 열지도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오히려 새누리당에선 “마치 정 의원 체포동의안의 부결을 미리 파악하고 민주당에 불똥이 튈 가능성을 예상하고 ‘알리바이’를 만든 것 같다”는 말이 나왔다.

 주로 정책파트에서 경력을 쌓아 ‘고지식한 경제통’이란 평가를 받고 있는 이 원내대표가 전략 부재로 의원들을 우왕좌왕하게 만든 반면 박 원내대표는 역으로 표 단속을 느슨히 해 결과적으로 정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이라는 악재를 새누리당에 안긴 셈이다. 이날 박 원내대표는 자신의 파트너인 이 원내대표에 대해 사퇴를 철회하라고 촉구하는 여유도 보였다. “새누리당 원내대표단이 사퇴해 국회가 마비되면 모든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 이한구 원내대표는 빨리 국회로 돌아오라”고 했다. 지난 5월 10일 두 원내대표의 첫 상견례에서 이 원내대표는 “정치 9단(박지원)과 백면서생(이한구)을 비교하면 되겠느냐”고 박 원내대표에게 말했는데 실제로 그런 결과가 나왔다는 평이 나온다.

 새누리당 일부에선 나아가 ‘민주당의 전략투표설’도 제기한다. 체포동의안 부결의 후폭풍을 계산하고 민주당 의원의 상당수가 부결표를 던졌다는 얘기다. 새누리당 당직자는 “투표 결과를 분석하면 민주당 의원들이 전략적 마인드로 일사불란하게 반대표를 던졌다는 결론이 나온다”고 주장했다. 11일 본회의에 참석한 민주당 의원수는 120명이고 정 의원 체포 동의안에 대한 찬성표는 74표에 불과했다. 새누리당(137명 참석)에서 3분의 1만 찬성표를 던졌다고 쳐도 민주당의 반대·기권·무효표는 90표까지 올라간다는 계산이 나온다.

 민주당은 이 같은 ‘전략적 투표설’에 펄쩍 뛰었다. 박기춘 원내수석부대표는 “그런 해괴망측한 얘기는 하지도 말라”고 발끈했다. 박영선 의원은 “새누리당이 체포동의안 부결을 민주당 탓으로 돌리는 발표를 하는데 이 부분은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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