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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남경필·김용태·김성태 … 국회 쇄신 거부한 쇄신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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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정효식
정치부문 기자

2012년 7월 11일 국회 본회의에서 정두언 의원 체포동의안이 부결된 데는 새누리당 ‘쇄신파’의 ‘조직적 거사’가 큰 몫을 했다. 이날 새누리당 쇄신파의 ‘원조’ 격인 남경필(5선) 의원은 정 의원을 위해 자유발언에 나서 “언론 보도만으로 한 사람의 유·무죄를 판단하는 건 잘못이니 기권해 달라”고 호소했다. 남 의원은 “사흘간 고민한 끝에 나섰다”며 "대선을 위해 한 사람을 정치·사회적으로 매장하자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김용태(재선) 의원은 지도부가 본회의 의사진행발언자를 남 의원 한 명으로 제한하자 민주통합당 박기춘 원내수석부대표를 쫓아가 발언기회를 달라고 졸라 발언권을 따냈다.

 그러면서 “여러분 상당수가 검찰의 선거법 수사를 받고 있는데, 체포동의안을 안 보내리란 보장이 있느냐. 국회에 체포동의안을 보내면 무조건 통과시키는 관례를 만들 거냐”며 ‘정곡’을 찔렀다.

 본회의에 앞서 열린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선 김성태(재선) 의원이 “대선 승리를 위해 동료도 희생시키자고 밀어붙인다”고 반발했다. 의총에선 박근혜 캠프의 공보단장인 윤상현(재선) 의원까지 반대파에 가담했다. 윤 의원을 제외한 나머지 의원들은 쇄신파로 불려왔다.

 약 4년4개월 전인 2008년 3월 21일. 4월 총선을 20일 앞두고 남경필 의원은 한나라당 당사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이날 “총선 승리와 이명박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 이상득 국회부의장(당시)의 불출마를 촉구한다. 이 부의장이 18대 국회에 들어올 경우 당내 모든 사안을 이 부의장과 상의해야 한다.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그의 말은 곧 대통령의 말로 해석돼 거수기 정당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남 의원이 테이프를 끊고 이틀 뒤인 3월 23일엔 정두언 의원의 주도로 총선 공천자 55인이 이상득 부의장의 불출마를 요구한다.

 이것이 소위 ‘55인 파동’이다. 거사는 실패했지만 이들은 이후에도 이상득 전 의원의 ‘사당화’와 ‘권력 사유화’를 비판하며 당 쇄신, 국정 쇄신을 요구했었다. 이를 계기로 18대 국회에선 남경필·정두언 두 사람을 중심으로 쇄신파가 형성됐다.

 정두언 의원의 체포동의서엔 정 의원이 2007년 가을 이상득 의원과 함께 임석 솔로몬저축은행 회장이 건넨 3억원을 받았다는 혐의가 적혀 있었다. 쇄신파의 주역이던 정 의원이 쇄신 대상과 비리 공범 혐의를 받게 만든 상황에 대한 반성은 그들에겐 없었다. 오히려 19대 총선에서 국민에게 약속한 ‘불체포특권 포기’라는 국회 쇄신을 쇄신파가 가로막았다. 스스로의 존재를 부정해버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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