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힉스 입자의 과학적 진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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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박인규
서울시립대 교수·입자물리학

유럽핵입자물리연구소(CERN)에서 “힉스 입자로 추정되는 새로운 입자의 발견”이란 소식이 최근 전해졌다. 힉스 입자는 ‘신의 입자’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그 존재를 놓고 호킹 박사는 100달러 내기를 했다고 해 흥미를 더한다. 우리에겐 재미 물리학자 고(故) 이휘소 박사가 처음으로 힉스 입자라고 명명했다는 뒷이야기 하나가 더 추가된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정치·경제·사회의 이슈가 아닌 이상 언론과 국민의 관심은 금방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다. 힉스 입자가 무엇인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잘 전달되지 않는 것 같다.

 원자핵은 다시 양성자와 중성자로 구성되고 그들은 쿼크라는 기본입자로 이뤄져 있다. 물질의 최소단위인 원자를 구성하고 있는 진짜 기본입자들을 분류해 나열하면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우리 주변의 모든 물질은 놀랍게도 6개의 가벼운 입자인 렙톤과 6개의 무거운 입자인 쿼크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을 페르미온이라 부르며 총 12개로 쉽게 말해 1다스다.

 그리고 이들 12개 입자가 서로 결합하고 붕괴되고 하는 상호작용에 관여하는 입자가 네 종류 있다. 이들을 보존이라 부르는데 각각 우리에게 친숙한 빛의 양자인 광자, 핵의 붕괴에 관여하는 W입자와 Z입자, 그리고 핵의 결합에 관여하는 글루온이라는 입자다. 표준모형이란 바로 이 16개 입자로 물질세계의 삼라만상을 다 설명할 수 있다는 야심찬 이론이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수학이다. 수학만 가지고는 이들 입자가 왜 각기 다른 질량을 가져 우리의 물질세계를 이루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도입된 것이 힉스장이다.

 자석과 자석을 가까이 가져가면 눈에 보이지는 않는데 서로 밀치고 당기고 한다. 힉스장은 이와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장의 일종인데, 이는 마치 잔잔한 호수에 가득 찬 물과 같은 역할을 한다. 단면적이 작은 모터보트는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큰 배는 천천히 움직이듯 힉스장에 놓여 있는 입자들은 서로 다른 마찰력을 느끼며 움직이고, 이것이 바로 질량의 근원이 된다는 것이다. 요컨대 이 힉스장 없이는 표준모형은 수학에 불과하고, 따라서 표준모형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 힉스장이므로 어느 정도 ‘신의 입자’란 이름에 걸맞다고 할 수는 있겠다. 이 힉스 입자가 존재를 드러내면 표준모형은 맞는 이론임이 증명되고, 그렇다면 이제 ‘원소주기율표 안에 존재하는 제2의 주기율표’를 확보하는 셈이 된다.

 과학자들은 이 힉스 입자의 존재 여부를 판가름하기 위해 반세기의 시간을 쏟아 붇고 있다. 미국과 유럽이 앞다퉈 가속기를 건설했다. 1980년대에는 표준모형이 예견하는 W입자와 Z입자들이 유럽CERN에서 발견됐고 90년대에는 미국 페르미연구소에서 톱쿼크가 발견되는 등 새로운 가속기가 건설될 때마다 신이 숨겨놓은 입자가 하나씩 그 모습을 나타냈다. 놀라울 따름이다. 일상생활에는 전혀 그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 입자들이 숨어서 우리 물질세계의 구성을 관장하고 있을 줄 누가 알 수 있었겠는가.

 이번 연말까지 CERN은 이번에 발견된 새로운 입자가 정말 표준모형의 힉스 입자가 맞는지 확인하는 절차를 밟는다. 표준모형의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이야기다. 힉스 입자가 맞는다면 과학자들은 그 입자의 성질을 정밀하게 측정하고자 할 것이다. 원소주기율표와 마찬가지로 정밀한 표준모형의 완성은 기본입자를 잘 다룰 수 있는 기본 지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 힉스 입자를 대량으로 만들어내기 위한 국제선형가속기가 필요하게 될 것이다.

 만약 힉스 입자로 판명되지 않는다면 표준모형은 수정이 불가피할 것이고, 이는 우리가 모르는 더 큰 신비가 진공 속에 숨어 있음을 이야기한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조물주와 물리학자들이 벌이고 있는 숨바꼭질은 계속될 것 같다. 연말에 CERN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자못 궁금하다.

박인규 서울시립대 교수·입자물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