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하면 힘든 과정 잊어…한지공예는 자식과 같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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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공예가 김보민씨는 우리 고유의 한지가 가장 세계적이라고 말한다.

1일 오전 천안시 서북구 쌍용 2동 한지공예 작업실. 그 자체로도 훌륭한 예술품인 한지 위에 자연을 옮겨 그리고 생활에 접목시켜 변신을 꾀하는 김보민(58) 한지공예가를 만났다. 그의 작업실에는 종이로 만든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섬세함과 견고함이 돋보이는 작품들이 즐비하게 놓여있다. 초가지붕 위 소담스런 박, 양면서랍장, 항아리, 로맨틱한 등불 같은 작품들이 모두 한지로 만들어졌다. 고향(천안시 서북구 성거읍 소우리)이 그리워 서울을 등지고 지난 2005년 천안에 터 잡은 그는 한지 고유의 느낌을 살린 실용적 작품을 즐겨 만든다.

-짧은 이력에 수상 경력이 화려한 편이다.

“45세에 한지를 만났다. 한 번 빠지면 '올인'하는 성격이다. 10년 걸릴 일을 1년 동안 해치웠다. 2007년 한국 미술제 한지공예 공모전에서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공모전 및 미술대전에서 금상·은상·우수상·장려상(2회)·특선(4회)을 수상했다. 한 해도 빠짐없이 공모전·초대전·단체전에 도전한 결과다.”

-취미나 여가생활로 배우는 사람이 많아졌다.

“한지공예는 돌멩이·괴목·연밥·칡넝쿨 등 자연 소재와 접목시키거나 문양과 색상 디자인에 조금만 변화를 주어도 새로운 작품을 만들 수 있다. ‘옛 것’만을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실용성과 장식성을 겸비한 멋도 살려 낼 수 있다. 오래 보아도 싫증나지 않고 쓰면 쓸수록 고풍스런 느낌을 자아내 배우는 이들이 늘고 있다. 천안시 시민문화여성회관·쌍용2동 주민센터·참종이 동아리에서 강의 중이다. 작업실에서는 전문가 과정인 사범 과정을 지도한다.”

-가장 많이 만든 작품과 맘에 드는 작품은.

“어느 해 명절 때 스탠드 50개를 만들었다. 다수의 주문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작업이 예술로 대접 받을 수 있음을 느꼈다. 기억에 남는 작품은 ‘참 종이 카페’다. 가로 130cm·세로 165cm·높이 245cm로 제작기간은 약 5개월 소요됐다. 한지공예 역사상 가장 큰 부피로, 인식을 바꾸고 가능성을 넓힌 작품이다.”

-영향을 준 스승은 누구인가.

“고색한지를 창안한 정순석 선생님이다. 제자들에게 전수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대한민국 한지 역사의 획을 그은 훌륭한 분이다. 젊은 감각으로 세심하고 꼼꼼한 지도를 아끼지 않는 정대훈 선생님과 수준 높은 안목과 실력을 겸비한 이영미 선생님의 영향도 크다. 그분들의 제자인 것은 내게 행운이다.”

-한지의 우수성을 꼽는다면.

“한지는 어떤 종이보다 질기고 병충해에 강하고 세균에 대한 저항력이 높다. 한 예로 1200년이 지나도록 버티어오고 있는 다라니경과 유네스코 선정 세계기록문화유산인 조선왕조실록이 있다. 한지는 수 겹의 공기층으로 형성되어 단열효과가 있어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소재다.”

-김보민 한지공예가에게 한지공예란 무엇인가.

“손으로 낳은 자식이다. 정성과 노력 없이 만들 수 없다. 작품 하나하나를 보면 작으면 작아서 예쁘고, 큰 가구는 듬직하고 쓸모 있어 좋다. 특징과 개성이 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 힘들고 어려웠던 제작 과정도 잊게 된다. 그래서 자식과 같다.”

-한지공예의 미래를 말한다면.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고 단언한다. 수제종이(hand made paper)는 한국·중국·일본 등 동남아 소수나라만이 생산하고 있다. 지난해 스위스 크리스마스마켓에서는 20일간 3000만원의 판매실적을 올렸다. 외국인들도 우리나라 한지공예의 아름다움과 실용성을 인정한 것이다. 전통적인 것을 살려 현대 감각에 맞게 발전시킨다면 전망 있다고 본다.”

글·사진=이경민 객원기자
leepig209@joongang.co.kr

◆한지공예 제작과정

고색한지공예 : 하드보드지(합지) 재단->골격->떡살로 모양->한지작업->고색처리(수건에 차염산 나트륨(락스)을 적셔 꼭 짠 후 공예품을 문지르면 한지가 탈색 된다. 이런 과정을 4~5회 걸쳐 실시해 본인이 원하는 색조가 되면 멈춘다.)->물 풀칠을 3회 이상->마감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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