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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구형 ‘도가니’ 가해자에게 12년 선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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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보호해야 할 장애 학생을 성폭행한 피고인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한다.”

 5일 오전 10시 광주지법 201호 법정. 이상현 광주지법 형사 2부 부장판사가 전 인화학교 행정실장 김모(64)씨에 대한 판결문을 읽어 내려가자 법정 안이 술렁였다. 검찰의 구형(7년)보다 5년이 더 높은 중형이 선고됐기 때문이다. 김씨에게는 전자발찌 부착 10년, 신상정보 공개 10년도 함께 내려졌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진술에 일관되지 않은 부분이 있지만 복합장애를 갖고 있는 특성을 감안해 증거능력을 인정했다. 장애인 대상 성범죄에 대해 경종을 울려야 한다는 국민 정서도 고려됐다.

 담담한 표정으로 피고인석에 앉아 있던 김씨는 충격을 받았는지 교도관의 부축을 받고서야 법정을 빠져나갔다. 김씨는 광주 인화학교의 성폭력 사건을 다룬 영화 ‘도가니’에 등장하는 실제 인물이다.

재판부는 김씨에게 “학생을 보호해야 할 행정실장이 저항하기 어려운 장애인 피해자를 성폭행한 죄질이 극히 불량하다”고 중형 선고 이유를 밝혔다. 이어 “피해자가 신체적·정신적인 충격으로 학교를 자퇴하고 최근까지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도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하기는커녕 범행을 부인하고 있어 엄벌이 불가피하다”고 판시했다.

김씨는 2005년 4월께 인화학교 행정실에서 청각장애인 A양(당시 18세)의 손발을 끈으로 묶고 성폭행한 혐의(강간치상 등)로 기소됐다.

 김씨가 범행 7년 만에 법의 심판을 받게 된 데는 영화 ‘도가니’의 영향이 컸다. 김씨는 범행 발생 후 수사를 받았지만 당시에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인정되지 않아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경찰은 지난해 ‘도가니’ 개봉 이후 영화 속에 나온 장면에 대한 의혹이 불거지자 재수사에 착수했다. 당시 김씨는 혐의를 부인했지만 경찰은 거짓말탐지기 조사와 피해자의 병원 진료 기록 등을 통해 혐의를 상당 부분 입증해냈다.

 2005년 당시 행정실에서의 성폭행 사건을 목격했던 B군(당시 17세)이 목격자로 나선 것도 영화로 인한 국민적 공분(公憤) 덕분이었다. 당시 B군은 범행을 은폐하려던 김씨에게 음료수 병으로 마구 폭행을 당했으며 그 후유증으로 자살까지 시도했다. 경찰은 자살을 기도했던 B군이 당시 등뼈 골절로 병원 치료를 받은 사실도 확인했다.

 영화 개봉 이후 국회에서 이른바 ‘도가니법’을 제정한 것도 재판부의 중형 선고에 배경이 됐다는 분석이다. 재판부는 “장애인 대상 성범죄에 대해 엄벌을 요구하는 국민의 염원에 따라 지난해 국회는 ‘도가니법’을 개정했다”며 “우월적 지위에 있는 김씨가 어린 청각장애인을 범행 대상으로 삼은 것은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고 밝혔다.

 김용목 인화학교성폭력대책위 상임대표는 “장애인에 대한 특성을 반영한 이번 판결은 미성년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성폭행 사건 판결의 선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서울고법 민사25부는 5일 “도가니 사건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광주지방법원으로 이송케 한 중앙지방법원의 결정을 취소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원고 스스로 관할 선택의 자유가 있다”며 “피신청인들이 서울에서 입원·통원치료를 받으며 중앙지방법원에서 재판받기를 원하는 만큼 광주지방법원으로 이송할 이유를 찾을 수 없다”고 밝혔다.

광주광역시=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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