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SW 일제단속에 테헤란·용산 비상!

중앙일보

입력

지난 5일부터 고강도로 불법SW 단속이 시작되자 단속을 피하기 위해 각 업체들에선 갖가지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당분간 아예 문을 닫거나 단속이 이루어지지 않는 저녁시간에만 일을 하는 업체들 마저 속출하고 있다.

“사용중인 소프트웨어가 정품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자료를 찾기 위해 3∼4일 회사 문을 닫기로 했다. 소프트웨어 구입과 관리를 직원 개인에게 맡겨놔 영수증은 대부분 분실됐고, 원본 시디롬도 상당수 사라졌다. 단속에 걸리지 않으려면 4천여만원어치를 또 사야 돼 차라리 단속이 지나갈 때까지 문을 닫기로 했다.”(게임개발업체 팀장)
“어제 4명의 직원들과 회사의 전 PC를 포맷하느라 밤을 꼬박 샜다. 7천만원어치의 소프트웨어를 구입해 직원들의 PC에 설치하느라고 회사 업무는 완전히 중단했다.”(소프트웨어 개발업체 직원)

지난 5일부터 시작된 정부의 불법 복제 소프트웨어(SW) 단속이 어느 때보다 고강도로 진행되자 벤처기업은 물론이요 대기업, 용산 전자상가 등이 대응책을 찾아 전전긍긍하고 있다. 사실 그동안 상당수의 업체들은 필요한 숫자만큼의 소프트웨어 정품을 구입하지 않고 하나의 소프트웨어만 산 뒤 서로 돌려가며 불법 복제해 사용한 것이 관행이었다. 그런데 정부가 형사처벌까지 앞세워 강경한 단속을 벌이자 초비상이 걸린 것이다.

심지어 벤처기업들 사이에는 ‘오늘은 어느 업체가 단속 대상이다’,‘어느 유명 닷컴기업은 단속에 걸려 9억원의 벌금을 내게 됐다’는 등 유언비어마저 나돌고 있다.

강남의 한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는 지난 8일, PC에 있는 저작용 툴 등 고가의 소프트웨어를 하나의 서버에 모두 저장시켰다. 이 서버를 미리 임대한 오피스텔로 가져가 외부에서 개발 작업을 계속하기 위해서다. 이 회사 관계자는 “드림위버 울트라 DEV 등 저작용 툴은 고가이기 때문에 우리 자금 사정으로는 도저히 구입할 수 없다”며 사정을 설명했다.

단속을 피하기 위해 갖가지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당분간 아예 문을 닫거나 단속이 이루어지지 않는 저녁시간에만 일을 하는 업체들이 속출하고 있다. 심지어 직원들을 재택근무 하도록 조치하는 곳도 나오고 있다.

3천여 개의 조립PC업체들이 몰려있는 용산 선인상가와 나진상가에 최근 단속반이 들이닥친데 이어 8일에는 원효상가에도 단속의 손길이 뻗치자 상당수 업체들이 일시적으로 문을 닫아버렸다.

용산 전자상가 소프트웨어 유통업자인 이모씨는 “가뜩이나 PC시장이 침체돼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정부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결국 MS 등 외국업체들의 압력 때문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매출도 뚝 떨어져 상인들은 업체별로 차이가 있지만 10∼50% 정도 판매량이 줄었다고 울상이다. 권영화 용산 전자상가조합회 부사장은 “끼워주는 소프트웨어가 없는 ‘깡통PC’만 팔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외국계 기업인 C사는 9일 직원들에게 출근하지 말라고 통고했다. 한 웹에이전시업체도 낮에는 아예 직원들이 출근하지 않고 단속이 끝나는 저녁 6시부터 출근해 12시까지 업무를 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정보통신부 지원을 받아 운영되는 소프트웨어지원센터 안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서울의 한 소프트웨어지원센터 입주업체 직원은 “40개 입주업체 가운데 3∼4개가 문을 닫았다”며 “나머지도 한 번 들이닥치면 모두 뒤질 것 같으니 당분간 모두 문을 닫자는 얘기를 주고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벤처업계 관계자는 “지금처럼 단속을 강화하면 살아남을 벤처기업은 하나도 없다”며 “테헤란로의 벤처기업들이 단속 공포 때문에 일에 손을 못대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불법 SW 합동 단속이 본격적으로 실시되면서 그동안 불법 복제품을 사용해오던 기업들은 정품 구입 예산 추가 책정, 불법 SW 삭제 등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직원이 90여명인 I사는 이틀 동안 정품 SW 교체작업을 벌인 결과 1억원 가량의 비용이 지출됐다. 중소기업인 S사의 경우도 SW 구매를 위해 3천만원의 비용을 지출해 정품으로 교체했다. 시스템통합(SI) 업체들은 이미 불법 SW 집중단속에 대비해 개인별 주의 사항을 담은 메일을 사내 게시판에 올리고 개인 PC에 대한 원격시스템 검사를 실시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LGEDS는 사내 직원을 대상으로 경고 메시지와 함께 사내 감사팀을 통해 불법 SW 사용에 대한 연중 불시단속을 실시키로 했다. 자체 불시단속에서 적발되는 경우에도 사내 규정에 따라 징계조치를 내린다는 방침이다.

전사원 PC에 대한 원격관리 시스템을 도입해 놓은 삼성SDS와 SKC&C는 직원이 출근해 PC를 부팅하는 동시에 원격 점검을 실시, 설치된 SW의 정품 여부를 개인별로 통보하고 비정품으로 판단되는 모든 SW를 곧바로 삭제할 것을 지시하고 있다. 특히 SKC&C는 12개 고객사의 개인별 PC에 대한 원격점검도 실시해 설치된 SW 현황과 회사가 보유한 라이선스 현황을 직접 비교한 후 그 결과를 고객회사에 통보해 주고 있다.

협회 및 상우회선 공동구매 알선

한편 불법 SW 교체과정에서 정품 SW 구입 신청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일부 SW가 품절되고 가격이 올라 기업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일부 외산업체의 대리점은 품귀 현상으로 가격이 오를 때를 기다리며 제품을 판매하지 않는 사재기 현상까지 보이고 있다.

용산 전자상가의 경우 MS가 조립PC 업체들을 대상으로 판매하는 윈도98 DSP 버전은 웃돈을 주고 거래되는 실정이다. 이에 협회와 상우회를 중심으로 SW를 싸게 구입하기 위해 공동구매 현상이 늘고 있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최근 마이크로소프트와 계약을 맺고 협회를 통해 윈도와 오피스를 함께 구입하면 값을 70% 할인 받게 해주고 있다. 이미 23개 업체로부터 5백65세트의 구매 신청을 받았다.

용산 전자상가조합회 권 부사장은 이번 단속을 계기로 “업체들에 정품 SW를 구입하도록 권유하고 조합이 상인들의 요청을 받아 저렴한 가격으로 SW를 공동구매하는 방안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자랜드21 임충빈 계장은 윈도, 포토샵, 아래아한글, MS오피스 등을 구입하려는 문의전화가 하루에 20∼30통씩 온다며 물량이 달려 제품을 팔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등 그래픽 소프트웨어를 팔고 있는 어도비사도 밀려드는 주문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대리점에서는 재고가 바닥났고 미국 본사에 주문 해도 일주일 이상 걸리기 때문이다. SW 개발업체의 한 관계자는 “포토샵을 구입하려고 신청했더니 2개월 이상 기다려야 한다는 답변을 들었다”며 “그렇다고 일을 안할 수도 없어 어쩔수 없이 불법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품 SW 공급업체들은 이번 단속으로 단기적이지만 매출 상승이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안철수연구소의 온라인 판매 실적을 보면 SW 불법복제 단속이 있기 전인 지난 주 평균 하루 매출이 5백만원 정도였다. 그런데 이번 주 들어 판매액이 급상승, 8일에는 1천7백만원을 기록했다.

“소프트웨어 불법복제는 창의와 도전의식이 핵심인 지식정보사회의 걸림돌”이라는 김대중 대통령의 지적으로 지난 5일부터 시작된 불법 복제 SW 단속은 다음 달 말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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