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수신.발신 문화충돌의 첫 해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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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말에 나타난 ‘정보문화’는 1과 0의 신호로 이룩된 컴퓨터의 디지털과 광케이블, 또는 통신위성에 의한 정보통신기술(CIT: Communication and Information Technology) 속에서 형성된 것이다.

이는 발신 지향적이고 일방 통행적인 정보 미디어가 발신(發信)-수신(受信)의 벽을 허무는 쌍방형(interactive) 체제로 바뀌게 되고, 디지털화로 인하여 방송계와 통신계, 그리고 컴퓨터가 하나로 통합되는 이른바 멀티미디어 환경이라 불리는 토털 디지털 미디어가 태어나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네트워크와 디지털의 정보혁명은 지금까지 서구문명이 주도해온 발신 지향적 정보문화를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시아권의 수신 지향적으로 대치하는 효과도 가져오게 된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발신형 정보와 수신형 정보의 괴리가 사라지고, 그 접목 속에서 21세기의 보다 성숙되고 균형 있는 정보문화와 정보사회가 태동될 수 있는 것이다.

서양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한국·일본 등 동북아시아인들이 긍정과 부정의 구분이 확실치 않다고 비판한다. 이것은 발신 지향적인 것과 수신 지향적인 정보문화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발신자 중심에서는 메시지가 말하는 사람 쪽에 있지만 수신자 지향에서는 듣는 사람 쪽에 의미 해석의 최종적인 열쇠가 들려 있다. 그러므로 발신자가 ‘예스(Yes)’라고 해도 듣는 사람이 그것을 ‘노(No)’라고 이해할 경우도 생기고, ‘노’라고 해도 ‘예스’로 듣기도 한다.

한국 같은 수신 지향적 문화에서는 상대방의 말하는 톤이나 전후 문맥 등 상호연관성에 대해 섬세한 주의를 기울이기 때문에 거의 실수 없이 긍정과 부정을 알아낼 수 있다. 발신자의 일방적인 송출이 아니라 수신자에 의해 정보가 재처리되고 가공됨으로써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

지금 지구촌화(globalization) 한 것이 지역화한(localization) 것과 혼융되어 가듯 발신 지향적 정보와 수신 지향적 정보의 조화는 발신과 수신이라는 본래적 소통의 특성에 적합한 21세기 정보사회 실현의 전제조건이다.

모든 인간의 생활과 그 접촉이 전 지구의 네트워크 속에서 이루어지는 정보사회에서 인간의 사유 형태는 점차 실체론(實體論)에서 관계론(關係論)으로 옮겨지게 되고, ‘개(個)’를 토대로 한 개인주의적 가치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중시하는 상호주의, 곧 ‘인(仁)’의 가치로 이동하게 된다.

개인주의를 뜻하는 영어의 ‘individual’이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원자론적 개념으로 산업주의의 골간이라면, ‘仁’은 두(二) 사람(人) 사이를 나타낸 것으로, 정보문화의 두 축인 발신과 수신이라는 상대론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문제로 등장하는 것은 전통적 정보 인식이나 그 양식이 새로운 정보통신기술 환경에 어떻게 대응해 가는가의 문제다. 발신자의 입장에서 보면 손으로 쓴 글이나 워드프로세서로 작성한 글이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수신자의 입장에서 보면 e메일로 전송된 글에서는 쓴 사람의 개성과 흔적을 전혀 읽을 수 없기 때문에 인간적인 정을 느낄 수 없다.

오래 전부터 발신 지향적 정보 속에서 살아온 서양사람들이 느끼는 것과 정(情)을 중심으로 한 수신 지향적 동양사람이 느끼는 디지털 네트워크 정보환경은 그 감도와 충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반대로 개인주의 문화권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DB화한 지식과 정보를 누구나 자유롭게 변조 인용할 수 있는 오늘날의 정보기술과 환경은 프라이버시와 지적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

한 마디로 정보통신기술과 의식의 괴리 현상 때문에 21세기는 근대산업시대에 우리가 겪은 것과 같은 또 하나의 물화(物化)된 문명과 사회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짙다.

단적인 예로 오늘의 통신기술은 시간과 공간의 차이를 없애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급하고 있지만, 그 요금체계는 오히려 시공에 따라 수많은 차등이 있다. 똑같은 우표 한 장이면 국내 어디에도 거리에 관계없이 배달됐던 과거의 통신 행정보다 후퇴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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