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상거래의 꽃, 온라인 직불 시스템 [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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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발표회장에서 연단에 서 있던 온라인 지불회사 페이팰(PayPal)의 공동창업자 피터 티엘은 20달러짜리 지폐를 공중에다 흔들었다. 그리고 회의에 참석한 200명의 청중들에게 “이 돈을 원합니까”라고 물었다.

“네”라는 소리가 일제히 실내를 가득 메웠다. 소란이 잦아든 후 그는 그 돈을 언제, 어떻게 받기를 원하는가에 대해 조사했다. 대답은 ‘그 돈을 조건없이 지금 당장 원한다’는 것이었는데 티엘은 별로 놀라지 않았다. 그는 인터넷을 통해 e-메일 주소가 있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든 현금을 송금할 수 있는 대중적인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티엘의 여론조사는 현찰의 위력을 알아보려는 의도였다. 티엘은 “사람들은 돈이라면 환장을 한다”며 “돈이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을 보면 놀라울 정도”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간단한 여론조사의 보다 근본적인 의도는 페이팰을 비롯해 지난 1년간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들의 사업성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것이었다.

99년 10월에 출범한 페이팰은 첫달에 1000명의 가입자를 확보했으며 현재는 450만 명을 회원으로 두고 있다. e베이(eBay)의 성공에 힘입어 인터넷 역사상 가장 성장이 빠른 금융 서비스 회사로 커가고 있다. e베이 가입자 중 절반이 페이팰의 회원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독립회사로 출발했으나 지금은 한때 라이벌이었던 엑스닷컴(X.com)이 소유하고 있으며 소비자 금융 분야에서 접속률 10%로 최고의 방문자 수를 자랑한다. 개인 대 개인, 또는 P2P 시스템이라고도 불리는 직불 시스템의 급격한 성장에도 불구하고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서비스는 아니다.

e베이의 열렬한 팬이나 소비자 금융 분야에 몸담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페이팰과 경쟁업체인 빌포인트(BillPoint)·머니잽(MoneyZap)·야후의 페이다이렉트(PayDirect) 등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신용카드는 아직까지 온라인 구매자들의 주요한 구매수단으로 쓰이고 있다. 소비자들은 지난해 530억 달러를 온라인 쇼핑에 지출했는데 90%가 신용카드로 결제를 했다.

하지만 신용카드의 허술한 보안이 소비자들이 인터넷 구매를 꺼리는 주요한 이유다. 인터넷 사용자 절반 이상은 신용카드의 데이터가 너무 쉽게 도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두려워한다. 그리고 그러한 두려움은 근거가 있다.
165곳의 전통적 매장과 온라인 쇼핑몰, 온·오프라인 복합매장에서 신용카드 사기사건을 추적한 가트너 그룹(Gartner Group)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온라인 구매 중 1.15%가 위법이었으며, 이는 일반 매장에서 발생하는 것보다 18배나 많은 수치다.

이런 환경 속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족시키는 해결책으로 직불 시스템이 등장했다. 직불 시스템의 매력 중 하나는 이해하기 쉽고, 쓰기 쉽다는 것이다. 페이팰의 가입신청서는 11개의 항목으로 이루어진 질문서 한 장으로 끝난다. 가입한 후에는 e-메일 주소를 가진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자신의 은행계좌나 신용카드에서 돈을 송금할 수 있다.

수신자는 페이팰로부터 돈이 왔다는 통보를 받고 가입신청을 한 후 (회원이 아닌 경우) 은행계좌로 이체할 수 있다. 서비스가 처음 시작될 때는 대부분의 가입자가 단순히 페이팰의 계좌를 신용카드에 연계시켜 사용했으나 이제는 점점 더 많은 현금 계좌를 개설하고 있다. 게다가 페이팰은 곧 현금자동입출금기(ATM)를 이용, 세계 어디서나 돈을 넣고 꺼낼 수 있는 현금자동입출금 카드를 지급할 예정이다.

페이팰과 다른 직불 서비스 제공업자들이 가상의 자판기를 운영한다고 생각해 보자. 음료수를 파는 사람과 전혀 마주치지도 않고 콜라를 꺼내 마실 수 있다. 송금자와 수금자를 연결해 주면서 페이팰은 양쪽에서 오간 모든 금융 데이터를 저장한다. 필요한 정보는 e-메일 주소가 전부다. 핫메일(Hot-mail) 계정도 가능하다. 멀리 떨어진 골동품 회사로부터 그릇을 사려면 판매자의 e-메일 주소만 알면 된다.

“최대의 과제는 회원이 지구상에서 직불 시스템을 이용하는 유일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었다”고 페이팰의 창업자 티엘이 설명했다. 그는 또 “e-메일 주소로 돈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은 사용자 한 명만 확보해도 이 서비스가 확산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그가 옳았다. P2P는 큰 매력을 지녔다. 페이팰의 이름은 못 들어봤어도 만약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현금을 보냈다는 메시지를 받으면 당연히 그 사이트에 들어가 가입을 하고 돈을 챙길 것이다. 재래식 금융서비스 회사와 대형 전자상거래업체들이 벌떼같이 모여드는 것이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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