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부 삶 아내 위한 슬픈 웃음 '선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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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히트를 한 영화의 주연이 후속작을 고르기란 쉽지 않다. 전작에 대한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공동경비구역 JSA' 3인방 중 이병헌은 '번지 점프를 하다' 에 출연, 서울 관객 40만이 넘는 흥행성적에다 평단으로부터 색깔있는 영화란 평을 끌어내 첫 신고식을 무난히 치러냈다.

반면 극중에서 가장 조명을 받은 송강호는 아직 후속작을 놓고 고민 중이다. 이병헌에 이어 두번째로 이영애가 영화 '선물' 로 얼굴을 내밀었다. 첫 영화 '인샬라' (1996년)의 흥행 참패로 잔뜩 주눅 들었던 그녀가 '…JSA' 로 상승세를 타더니 이번 작품에선 한층 나은 연기를 보인다.

화장기를 지운 채 청승스럽기까지 한 얼굴로 눈망울을 붉히는 대목에선 눈물샘을 막고 버틸 관객이 드물 듯하다. 이영애에게 어울리는 역이 아닌가 싶다.

오기환 감독의 데뷔작인 '선물' 은 '편지' '약속' 등을 잇는 전형적인 한국형 멜로 드라마로 시종일관 관객의 감정선을 자극한다. 죽어가는 아내의 추억을 찾아주는 것이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하는 3류 개그맨 남편. 그 남편이 TV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소원인 아내. 그들의 사랑 얘기를 담고 있다.

올 겨울 '순애보' '불후의 명작' 등으로 시작한 길고 긴 멜로 시리즈의 끝자락에 선 영화이기도 하다.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한 개그맨 정용기(이정재)와 아내 박정연(이영애). 정연은 시한부 삶을 살고 있지만 아프지도, 슬프지도 않은 척 남편에게 병을 숨기고 산다.

개그맨 남편이 웃음을 잃지 말아야 하기에 끝까지 꿋꿋함을 잃어버릴 수 없다. 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남겨두고 떠나야 하는 아픔도 혼자 감당한다.

그런 아내의 처지를 알아챈 용기도 아내의 거짓말을 지켜주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그녀의 행복한 웃음과 마지막 추억을 위해 자신의 '웃음' 을 만들어간다.

이런 이야기를 축으로 용기를 등치려다 오히려 추억의 메신저로 변신한 학수(권해요)와 학철(이무현)콤비가 등장, 아련한 초등학교 시절의 기억을 더듬게 하면서 자칫 지루할 수 있는 드라마에 신선한 웃음을 제공한다. 잃어버린 것에 대한 향수에 젖게 하는 복고풍 멜로를 만들겠다는 감독의 의지는 꽤 성과를 거둔다.

불치병과 죽음 그리고 그 사이에 놓인 연인의 사랑을 내세운 전형적인 멜로의 수순을 밟고 있어 어쩌면 '촌스럽다' 는 지적을 면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설득력이 부족한 대목이 눈에 띄어 아쉽지만 관객이 감정을 내맡기는데 지장을 줄 만큼 큰 걸림돌은 되지 않는다. '눈물로 스트레스를 한번 확 풀어 볼 수 없을까' 라고 생각하는 관객들에게 제격인 영화다.

개그맨 용기가 죽어가는 아내 앞에서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 의 아리아에 맞춰 눈물의 노래를 부르는 장면과 고아란 이유로 결혼 후에도 며느리로 인정하지 않던 시부모가 아들의 부탁으로 정연을 찾아와 화해하는 모습이 뭔가를 노리고 만든 장면이다.

개그맨 백재현이 영화 속 개그프로 사회자로 등장해 분위기를 활발하게 만들고 홍석천도 카메오로 출연해 눈길을 끈다. 세계적인 뉴에이지 그룹 시크릿 가든이 주제가를 연주했다. 24일 개봉.

- Note
사람들은 왜 죽음을 바로 눈 앞에 두고서야 화해하고 마음이 너그러워지는 걸까.그런 마음을 살면서 조금씩 나눠 갖는다면 보내는 사람을 두고도 그렇게 슬퍼하며 눈물 흘리진 않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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