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철호의 시시각각

박근혜의 침묵과 한비자의 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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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철호
논설위원

요즘 새누리당 주변에 은밀하게 한비자(韓非子)의 개 이야기가 흘러다닌다. 박근혜 전 대표와 친박 진영을 빗대는 말이다. 옛날 중국에 술 빚는 솜씨가 뛰어난 주막(酒幕)이 있었다. 주인은 친절했고, 물을 섞거나 되를 속이지도 않았다. 이렇게 삼박자를 고루 갖춘 술집에 도무지 손님이 들지 않았다. 잘 익은 술은 독째로 쉬어버리기 일쑤였다. 고민하는 주인에게 이웃이 말했다. “자네 집 앞의 개가 너무 사납기 때문일세.” 손님을 쫓아내는 사나운 개 때문에 술이 상한다는, 한비자에 나오는 구맹주산(狗猛酒酸)이다. 이 고사성어엔 비박(非朴) 진영의 상대적 박탈감, 또는 박 전 대표에게 접근하기 어려운 시샘이 어른거린다. 하지만 뜬소문으로 넘길 일은 아니다.

 지난주 친박 핵심 인물과 중앙일보 인사가 만났다. “경선 룰 다툼으로 새누리당 이미지가 구겨지고 있다”는 지적에 이 인사는 “큰일이다. 그런데 누구도 그런 말을 꺼내기가 참 어렵다”며 입맛을 다셨다. 그는 “지금 고언(苦言)해 줄 데는 언론밖에 없지 않으냐”고 주문했다. 한마디로 찍히기 싫다는 발뺌이다. 뒤집어 보면 핵심 측근조차 박 전 대표에게 쓴소리를 못 꺼내는 내부 분위기가 묻어난다. 원래 한비자도 “작은 충성은 큰 충성의 적이다(小忠則大忠之敵也)”고 가르쳤다. 사나운 개처럼 주변 인물을 경계하라는 것이다.

 새누리당의 복잡한 경선 룰에 별 관심이 없다. “룰에 선수가 맞춰야지, 선수에 따라 룰을 바꿀 수 없다”는 박 전 대표의 원칙론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룰은 만고불변이 아니다. 축구의 오프사이드도 마찬가지다. 한동안 0:0의 수비 축구가 만연하면서 국제축구연맹(FIFA)이 칼을 뺐다. 1990년에 공격자가 최종 수비수와 동일 선상에 있어도 괜찮게, 2005년엔 공만 터치하지 않으면 반칙이 아니라며 공격축구의 물꼬를 텄다. 88년 오프사이드를 폐지한 아이스하키의 인기가 폭발한 데 자극받은 것이다. 최근엔 FIFA 회장이 “아예 오프사이드를 없애자”고 총대를 멜 정도다.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관중의 재미다. “축구는 한 골 차 승부, 3대2 가 이상적”이란 ‘펠레 스코어’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인간의 뇌는 15분 간격으로 흥분되도록 태어났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는 약자일 때 강했다. 경선 패배의 깨끗한 승복과 천막 당사는 선명한 이미지를 남겼다. ‘원칙과 신뢰’는 사회적 공감대를 자극하며 ‘박근혜의 상표’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제 박 전 대표는 가진 자가 됐다. 강자의 입장에서 ‘원칙과 신뢰’를 고집하면 독선으로 비친다. 그에게 5년 전 경선 룰은 쓰라린 기억일지 모른다. 하지만 국민에겐 훨씬 흥미진진했다는 사실도 부인하기 힘들다. 비박 후보들이 요구하는 ‘국민 참여 확대’는 시대적 흐름이기도 하다. 완전한 오픈 프라이머리도 아니고, 국민 참여 비율을 좀 늘리자는데 왜 그렇게 인색한지 모를 일이다. 양보는 힘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는 미덕이다.

 이명박 정부는 ‘만사형통(萬事兄通)’ 하나에 망가졌다. 차라리 1% 대통령이었다면 역사적 인물이 됐을 텐데, 대선 캠프 출신의 0.001%만 챙기다가 무너졌다. 우리 사회는 더 이상 ‘대통령=메시아’로 여기지 않는다. 자세를 낮추고 귀 기울이는 열린 지도자를 대안으로 삼는 분위기다. 이제 정치도 소비되는 시대다. 4·11 총선 이후 새누리당 드라마는 너무 뻔하고 지루하다. 스토리 라인이 살아나지 않는다. 이러니 시청자들이 민주당과 통진당을 오가며 채널을 고정시키는 건 당연하다. 박 전 대표에겐 낡디낡은 주막집 개 이야기가 떠도는 것 자체부터 수치스러운 일이다. 불길한 전조임이 틀림없다. 대선을 앞두고 정치판에 온갖 근사한 술집들이 요란하게 신장개업 중인데, 누가 사나운 개가 덤비는 주막을 찾겠는가. 박 전 대표는 70일 넘게 입을 열지 않고 있다. 이제 곧 오랜 침묵을 깨고 어떤 입장을 취하고 나설지 궁금하다. 다만, 그 카드를 어떻게 판단할지는 정치 소비자인 유권자들의 자유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공화국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