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들이 펼치는 환상 쇼 '나비 도상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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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면에 매달린 나비의 고치 사이사이에 사람이 거꾸로 매달려 있다. 몸이 칭칭 감긴 미라 형상, 호랑나비 무늬가 얼룩덜룩한 반나체의 남자. 죽은 사람들이 고치를 벗고 다시 날아오르기를 기대하는 작가의 염원을 담고 있다. 캐나다 작가 데비 루크의 설치작품을 담은 슬라이드다.

38m 길이의 팩스용지를 나비무늬가 뒤덮고 있는 작품도 있다. 박재용씨가 지난 4년간 실제로 받은 팩스 위에 나비 이미지를 겹쳤다. 제목은 '내가 날 수만 있다면 나도 나비처럼 날고 싶다'.

오는 15~26일 서울 동숭동 문예진흥원 미술회관에서 열리는 '나비 도상전' 이다. 문예진흥원이 '2001년 우수 기획전'의 하나로 선정, 미술기획사 코아트프로젝트와 함께 주최하는 행사다. 전시는 나비를 주제나 소재로 한 회화·사진·영상·설치·행위예술을 한자리에서 보여준다.

캐나다의 루크, 프랑스의 베르트랑 가덴느·잭 바나르스키, 프랑스에 10여년간 체류하며 작업 중인 한국작가 김현숙·김범수·박재용씨, 그리고 국내작가 김기식·김동유·김영진·김지섭·문병탁·박성훈·심현주·임승률·이은·정인엽씨 등 16명이 참여하는 테마기획 단체전이다.

실제의 나비나 나비의 이미지에서 출발한 다양한 작품들을 보여준다. 미술회관 1층 전시장 입구에는 고치모양 나뭇가지 통로가 설치돼 있다. 관객이 전시장에 들어가면서 나비로 탈바꿈한다는 문병탁씨의 작품이다.

정인엽씨는 전시장 천장과 한쪽 벽에 금속 나비 5만여마리를 붙였다. 관객이 다가가면 저절로 조명이 어두워지면서 형광안료가 빛을 낸다.

김현숙씨는 야광안료로 그린 나비 이미지 추상화를, 바나르스키는 모터가 달린 나무조각이 날갯짓을 하는 조각을 보여준다. 천장에서 비치는 나비문양을 관객이 손으로 받아보게 하는 가덴느의 작품도 있다.

임승률씨는 배달용 오토바이에 나비 날개가 있는 제복을 갖추고 관객에게 차를 접대하는 '남자 레지 스토리'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뱀의 몸통에 나비 무늬를 덧씌운 심현주의 애니매이션이나 나비를 점으로 삼아 1백호 크기의 인물초상을 그린 김동유씨의 그림도 눈길을 끈다.

전시를 기획한 엄기숙씨는 "나비가 알·애벌레·번데기·나비로 변태하는 과정은 인간의 삶을 상징한다. 나아가 나비는 인간의 상상력·부활·꿈·헤픈 여자 등 다양한 연상을 부른다. 동양과 서양에 따라 다른 나비의 이미지들을 담은 작품을 한데 모았다"고 설명했다.

개막일인 15일 오후 5시부터는 김현숙·정인엽·임승률씨 등 작가 3인이 연출하는 퍼포먼스가, 오후 6시부터는 나비를 소재로 한 작품을 연주하는 음악회가 열린다.

이번 전시는 오는 5월4~14일 전남 함평군에서 열리는 '함평나비축제'의 부대행사로 순회전시, 내년 3월엔 프랑스 파리의 '한국의 주간'행사에 초청전시 등이 예정돼 있다 (http://www.coartproject.com")02-825-9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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