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프로야구] 스타스토리 (25) - 에토 아키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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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번. '일본야구의 천황' 나가시마 감독이 99년까지 사용했던 백넘버이다. 하지만 이제 이 33번 유니폼의 주인은 더이상 나가시마 감독이 아니다. 나가시마 감독이 작년 어떤 타자를 얻기위해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이 백넘버를 내줬기 때문이다. 이렇게 '천황'으로부터 33번을 하사받은 '대단한' 주인공은 누굴까?

당시 보도에 의하면 작년 요미우리는 이 타자를 영입하기 위해 4년간 무려 12억엔 이상이란 어마어마한 베팅을 한 것도 모자라 나가시마 감독이 친히 히로시마를 방문해 이 타자에게 등번호를 물려주기로 약속까지 할 정도로 영입에 지극정성이었다 한다.

이 주인공은 바로 지난 10년간 히로시마 타선의 축으로서 활약하다 작년 FA를 통해 요미우리로 이적한 에토 아키라(31)란 슬러거이다.

도대체 에토 아키라가 어떤 선수였기에 일본 최고의 권위와 프라이드를 자랑하는 요미우리에게서 이와같이 파격적인 대우를 받을수 있었을까?

에토는 지난 11년간의 데이터가 말해주듯 90년대 일본야구에서 절대 빼놓을수 없는 거포 중의 한명이다. 90년대 홈런왕에 두번 등극한 걸 비롯, 93년이후 한해도 빼놓지 않고 25홈런을 기록한데서 그의 탁월한 파워를 짐작하기란 그리 어렵지않다.

그의 이런 파워는 이미 간토 고교시절부터 부각되었다. 고교 3년동안 타율 0.550에 61홈런을 기록하며 이미 타격에서 남다른 재질을 보이던 에토는 89년 드래프트 5순위로 히로시마의 선택을 받았다.

이후 2년간 경험을 쌓은 에토는 3년째 되던 92년부터 89경기에 출장, 타율 0.289에 16홈런을 기록하며 주전으로 도약할 발판을 마련했다.

그리고 93년, 주전 3루수 자리를 굳힌 에토가 자신의 잠재력을 현실화시키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해 에토는 34홈런, 82타점의 성적으로 생애 첫 홈런왕 타이틀을 따내며 일약 히로시마 타선의 핵으로 떠올랐다.

이후 에토는 노무라,마에다 등과 더불어 히로시마 붉은 군단의 타선을 리드하는 핵으로 군림하며 90년대 중반까지 히로시마를 센트럴의 강자로 이끄는데 중주척인 역할을 했다.

특히 94년 에토의 파워는 대단했다. 이해 에토는 8월에만 무려 16개의 홈런을 몰아치는 괴력을 과시하며 28홈런에 81타점을 기록했고, 타율은 생애처음으로 3할(0.321)을 돌파했다. 시즌초 부상결장으로 홈런왕 2연패가 무산된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95년에도 에토의 방망이는 식을줄 몰랐다. 이해 에토는 나란히 자신의 최고기록인 39홈런과 106타점을 기록하며 홈런,타점부문을 석권, 명실공히 센트럴 최고의 거포로서 자리매김했다.

에토에게 있어 95년은 81년 야마모토 고지(히로시마,43홈런)이후 14년만에 센트럴리그에서 40홈런 이상을 친 일본인 타자가 될지 여부로 큰 기대를 모았지만 충수염으로 시즌막판의 4경기를 결장, 아쉽게 40홈런 고지를 정복하지 못한게 유일한 아쉬움을 정도로 화려한 시즌이었다.

이런 기세를 몰아 에토는 96년 시즌을 앞두고는 50홈런을 목표로 할 정도로 자신에 넘쳤다. 선천적인 파워에 임팩트 순간에 힘을 집중하는 능력까지 겸비한 에토에게 이런 야망은 전혀 허황된 목표만도 아니었다.

그리고 비록 50홈런엔 못미쳤지만 96년에도 에토의 활약은 여전했다. 이해 타율 0.314에 32홈런,79타점을 기록한 에토는 2년만의 3할복귀와 동시에 2년연속 30홈런 이상이란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96년은 에토에게 있어 마냥 영광스런 해는 아니었다. 96년 8월 불규칙 바운드 타구에 눈을 맞아 수술까지 받은 탓에 106경기밖에 출장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수술후 에토는 긴 슬럼프에 빠졌다. 볼에 대한 무의식적인 공포가 생긴 탓에 타격에서 이전과 같은 날카로움을 보이질 못했다. 97,98 2년동안 부상후유증에 시달린 에토는 장타력은 그런대로 유지했지만 정교함에서 약점을 노출했다. 그 결과 타율은 3할대 타율에서 2할5푼대로 뚝 떨어졌고, 98년에는 삼진왕(103개)으로 전락할 정도로 선구안에 문제점을 드러냈다.

하지만 히로시마에서 10년째 되는 해이자 FA를 채우는 마지막 해인 99년, 에토는 예전의 모습을 되찾아 갔다. 이해 에토는 27홈런에 타율은 0.291까지 끌어올리며 다시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99시즌후 요미우리와 주니치의 치열한 스카우트전 끝에 요미우리를 선택한 에토는 올해 요미우리를 일본제일로 이끌며 그들의 투자와 정성이 헛되지 않았음을 바로 입증했다.

처음 에토가 요미우리로 갔을때만 하더라도 그가 규모가 작은 히로시마 구장에서 넓고 큰 도쿄돔으로 옮겨 왔기에 홈런수가 떨어지리라는게 대다수의 전문가들의 예상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에토는 비록 타율은 다시 0.250대로 떨어졌지만 홈런 32개(리그 3위)에 타점 91점(리그 4위)을 올리며 역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진정한 거포임을 증명했다.

에토를 평가할 때 특히 주목해야할 점은 그가 소위 말하는 영양가 있는 타자라는 점이다. 에토의 경기를 보면 비록 타율이나 정교함이 떨어지긴 하지만 홈런이나 타점이 결정적인 승부처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아 팀으로선 공헌도가 보다 높고 상대에게는 더욱 위협적이다.

올시즌만 보더라도 시즌말 한때 부상에 지독한 타격슬럼프까지 겹친 에토는 일시적이었지만 주전에서도 빠질 정도로 부진했었지만 이후 다시 홈런포를 재가동하면서 요미우리가 확실히 선두자리를 굳힐수 있게 하였다. (요미우리가 우승을 확정짓는 날에도 주니치 게일러드로부터 9회말 극적인 동점 만루홈런을 친 타자역시 에토였다.)

재팬시리즈에서도 에토는 기대와 달리 초반 2차전까진 빈타를 거듭, 한때 타순이 7번까지 떨어지는 수모를 당했지만 3차전 이후 연거푸 홈런을 터뜨리며 대역전 우승의 발판을 마련하는 해결사 노릇을 해냈다. 이렇듯 에토란 타자는 비록 정교하진 않지만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결정타를 가지고 있기에 그의 가치는 더욱 위력적이다.

또, 우리는 흔히 에토를 덩치 크고 둔한 거포로만 인식하는데 이건 오산이다. 그는 95년 14개의 도루를 성공한 것을 비롯, 거의 매시즌 평균 7개 이상의 도루를 할 정도로 베이스런닝에도 센스가 있는 선수이다. 수비에서도 에토는 핫코너라고 불리는 3루를 맡고 있지만 언제나 수비에서는 리그 최상급이라고 평가받을 정도로 안정적인 수비를 구사하는, 한마디로 '일본판 빅 캣'같은 민첩함을 지닌 선수이다.

올시즌 역시 요미우리는 자타가 공인하는 최강의 타선을 구축하고 있다. 요미우리 타선이 이런 호평을 받는데는 에토의 비중을 빼놓을수 없다. 마쓰이,다카하시 등의 왼손 거포들과 밸런스를 맞춰주는 오른손 거포로서 가장 중요한 타자가 바로 에토이기 때문이다. 그의 집중력있는 장타력이 올해도 지속되는 한, 요미우리의 화력은 올해도 충분히 위력을 발할것 같다.

-에토 아키라 (江藤 智)-

생년월일: 1970년 4월 15일
신장,체중: 182cm,95kg
투타: 우투우타 백넘버:33번
소속: 히로시마(90-99),요미우리(2000-)
통산성적:1050경기,1014안타,248홈런,670타점,57도루,타율0.279(99년까지)
작년성적:127경기,117안타,32홈런,91타점,7도루,타율0.256
수상경력:93년 홈런왕, 95년 홈런,타점왕
골든글러브 1회, 베스트나인 6회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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