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부패 정당이 압도적 지지받는 '황당' 국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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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미국 뉴멕시코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멕시코 시우다드후아레스 외곽 계곡 지역에서 여성 수십 명의 시신이 발견됐다. 대부분 2009~2010년 실종된 이들이었다. 멕시코 최대 마약 카르텔이 공격적으로 세를 확장하고 있는 이곳에서 지난해 1~9월에만 1206명이 숨졌다. 2010년 304명의 여성이 숨진 이후 최악의 상황이라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하지만 멕시코 국민은 더 이상 전처럼 분노하고 있지만은 않다. 투표로 자신들의 의지를 보여주려 하는 것이다. 끊이지 않는 집단 살상에 따른 멕시코 국민의 좌절은 다음 달 1일 치러질 대선에서 야당인 제도혁명당(PRI) 후보 엔리케 페냐 니에토(46)에 대한 압도적 지지로 이어지고 있다. PRI는 사실상 최초의 민주선거였던 2000년 대선에서 패배하기 전까지 71년 동안 멕시코를 통치하며 부정부패를 일삼았다. 마약 카르텔에서 뇌물을 받고 밀매를 눈감아주는 대가로 치안을 유지했었다.

 PRI에서 정권을 빼앗은 국민행동당(PAN)의 두 번째 대통령 펠리페 칼데론은 2006년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군을 투입해 마약 카르텔 소탕에 나섰다. 하지만 마약이 사라지는 대신 보복적 학살이 새롭게 보태졌다. 마약과의 전쟁 이후 멕시코에서는 최소 5만 명이 숨졌다. 피해자 단체는 사망자가 6만 명, 실종자가 2만 명이라고 추정한다.

 이번 대선에서 PRI가 승리할 경우 멕시코 유권자들은 자신의 손으로 내쫓은 부패정당을 12년 만에 다시 권좌로 불러들이는 것이다. 무능한 명분보단 안정된 부패가 차라리 낫다는 선택이다. 멕시코 국민이 맞닥뜨린 역설은 미국 조사 전문기관 퓨(Pew) 리서치센터가 20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 드러난다. 응답자의 80%가 군대를 동원한 마약 카르텔과의 싸움을 지지하지만, 상황이 더 나빠졌거나 마찬가지라는 응답이 50%나 됐다. 샌디에이고대 정치과학과 데이비드 셔크 교수는 “멕시코 여당은 폭력을 불러온 정당으로 낙인찍혔다”고 말했다. 『멕시코, 중단된 민주주의』의 저자 조 턱만은 “PAN은 민주적으로 집권했지만 사회 구조개혁 실패로 정통성 강화에 실패했고, 이 때문에 카르텔을 굴복시키지도 못했다”고 지적했다.

유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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