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세상] '똥타령' 붐 이는 어린이 그림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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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그림책에 때아닌 똥타령이 한창이다. 대형서점에 가보면 똥을 소재로 한 20종 가까운 책을 발견할 수 있을 터인데, 이런 변화는 어떤 징후로 읽어야 한다고 나는 본다.

즉 '똥=더러운 것' 이 아니라 순환질서의 연결고리라는 옛 지혜에 대한 재확인 말이다.

지난주 '행복한 책읽기' 에 소개된 『똥벼락』도 그렇지만 똥타령의 원조인 탁월한 번역서『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를 보고 꼬마들이 때굴때굴 구르는 장면을 본 적도 있다.

요즘 도회지 아이들에게 교육 효과 만점인 것이 똥 얘기지만, 실은 우리 문학사에서 똥을 가장 고약하게 묘사한 작가가 있다.

무시무시한 글솜씨의 수필 「권태」(1936년 발표)를 쓴 시인 이상 말이다. 「권태」는 뾰족한 자의식의 과잉 노출 면에서 카프카의 「변신」 못지 않은 작품이지만, 중간에 시골아이들 똥누기 놀이 묘사가 나온다.

무료함에 지친 시골애들이 '최후의 유희' 랍시고 겨우 똥 누기 시합이나 하고 노니 불쌍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똥과 자연, 시골생활을 한꺼번에 우습게 본 이 비아냥을 '뭘 모르는 서울 토박이' 의 관념이라며 공박한 작품을 나는 안다.

소설가 박완서의 자전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가 그것이다. 장장 5쪽에 걸쳐 이 작가는 시골 유년기 시절 똥, 그리고 뒷간이 얼마나 '환상의 놀이터' 였나 하는 점을 정말이지 감칠맛 나게 묘사한다.

이에 덧붙여 이 작가는 시골 아이들은 살아 움직이는 자연의 일부라서 심심하고 뭐하고 할 겨를조차 없이 신나게 즐기고 놀았다는 회고를 하고 있다.

나는 이렇게 본다. 30년대 서울내기 출신 모더니스트의 공허한 농촌 비하, 똥 비하가 뒤집히고 있다는 것, 문제는 그것이 도회지 삶 반세기에 지칠대로 지친 동시대인에 의해 자연친화의 목소리 형태로 제기되고 있는 징후에 다름 아니라고.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지난주 소개했던 농부 이영문의 『이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농사꾼 이야기』(기획리뷰면)에서도 예외없이 똥타령이 등장했다.

자연과 인간이 어울려 사는 삶에 대한 가장 정교한 관찰로 기억될 이 책에서 저자는 '시늉만 유기농업' 을 하는 이들이 수입 유기질 비료를 뿌려대며 멀쩡한 땅을 괴롭히고 있다고 지적을 한다.

옛 시절 똥장군에 담아 뿌렸던 유기질 비료인 똥도 반드시 가을이 끝날 무렵 뿌렸다며 때맞춰 내리는 서리와 함께 독기를 없앴던 옛사람들의 지혜를 소개하고 있다.

어떠신지. 제비 한마리에 봄이 오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출판물의 똥타령에서 우리시대 점증하는 자연친화의 목소리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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