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 등장한 기우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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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 속에 비가 그립다. 논바닥이 거북등 같다. 단비를 기원하는 기우제(祈雨祭)도 등장했다. 『고려사절요』에는 기우제를 지냈던 예법이 나온다. 가뭄 때는 죄수들에게 죄가 있는지 자세히 따져 물어 억울하게 형벌을 받는 일이 없도록 했다고 한다. 가난한 백성들은 도와주고, 무덤이 파헤쳐져 있으면 잘 다독여 묻어주었다. 임금은 반찬의 가짓수도 줄였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음력 4~7월 사이에 기우제가 잦았다고 기록돼 있다. 민간에서는 산에서 장작·솔가지 등을 모아 태우거나 몰래 매장한 묘를 찾아 파내기도 했다. 함께 줄다리기를 하거나 시장을 옮겨 열어 비구름을 부르는 의식도 치렀다. 기우제를 지내는 방법은 다양했지만 온 나라 사람들이 근신(謹愼)하며 비를 기다리는 마음은 같았다.

 요즘 단비가 필요한 것은 들판의 농작물만은 아닌 것 같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 교수(독일 카를스루에 조형예술대학)는 『피로사회』에서 “분노는 어떤 상황을 중단시키고 새로운 상황이 시작되도록 만들 수 있는 능력이다. 오늘날은 분노 대신 어떤 심대한 변화도 일으키지 못하는 짜증과 신경질만이 점점 더 확산되어 간다”고 했다. 제대로 분노할 줄 모르는 사람들의 짜증과 신경질에도 시원한 비를 퍼부어주고 싶은 요즘이다. 이번 주말은 구름이 많고, 내륙 일부 지방에 소나기가 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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